웹소설에서 재현된 다양한 세계(이융희 문화 연구자) 첨부이미지 : 그림15.png

*본 게시물은 ‘K-웹소설과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웹소설은 스마트폰의 웹소설 전문 어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하여 장르성을 띈 장편 소설이 5,000자 이내의 분량으로 짧게 분절되어 유료 상거래되는 연재 형식을 일컫는다. 2000년대 대여점에서 유통되던 ‘인터넷소설’, ‘장르소설’, ‘사이버소설’ 등에서부터 유래하였으며 IT기술의 발전 이후 2013년을 전후하여 웹소설이라는 명칭으로 공식화되었다. 당시 100~200억 정도의 규모로 추산되었던 시장은 2023년 현재 1조원 규모로 확대되었으니 무려 10년 사이 100배 이상의 성장을 거둔 셈이다.
웹소설이 이렇게 단기간 큰 성장을 거둘 수 있는 까닭은 IT기술이 발전하면서 단일 콘텐츠가 하나의 콘텐츠의 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접하며 확장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하루에 약 한 편, 한 달에 한 권 정도의 분량이 창작되는 웹소설 시장은 웹툰이나 드라마, 영화를 만들기에 좋은 시나리오의 보고이자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을 주목한 수많은 콘텐츠 제작자들이 웹소설을 발굴하기 위해 애썼고, 작가들 역시 글을 쓰며 먹고 살 수 있는 시장이 열린 만큼 자신의 역량을 뽐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작업에 매진한 것이다.

이러한 시장의 선순환은 웹소설 세계가 한 달에 1만 종 이상의 작품이 유통될 정도로 거대한 확장을 불러왔다. 물론 이런 흐름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시장에 웹소설이 범람하고,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OSMU(one source multi use)나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전략의 콘텐츠들이 늘어나면서 대중들이 ‘비슷한 작품들만 나온다’며 피로감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웹소설이라는 형태로 유통되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장르문학인 탓이다. 장르문학의 ‘장르’는 공통의 소재나 형식을 바탕으로 얼마나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는지 실험하는 일종의 놀이터이기 때문이다.

 

 

ⓒ라온E&M

 

문제는 이러한 서사가 웹소설이라는 속도의 바깥으로 확장되면서 벌어진다. 웹소설에서 이러한 장르적 놀이가 가능한 까닭은 3개월에서 6개월 사이, 유행보다는 패션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극단적인 소재 교체가 이루어지며 빠르게 소재 전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작기간부터 서비스 과정까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 이상의 시간이 투자되는 웹툰이나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긴 시간 동안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고 자연히 콘텐츠의 소비자들은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웹소설이 가진 속도감, 그리고 ‘장르’의 성격은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 웹소설은 빠르게 소비되는 만큼 빠르게 창작되고, 작가들은 이러한 창작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서 기계적인 공식을 통해 소설을 창작한다. 소설은 몇 가지의 패턴으로 조직화되고, 고구마-사이다 공식처럼 캐릭터를 사용하고 구현하는 문법도 고도화된다. 그렇다보니 웹소설은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국이라는 사회의 각계각층 사람들을 포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흔히 웹소설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초능력을 다루는 영웅의 이야기, 또는 괴물을 해치우는 도사나 마법사, 기사의 이야기처럼 여기곤 한다. 그렇지 않다. 웹소설의 세계는 이제 공상의 세계가 아니라 일상에서 독자들이 바라는 욕망을 재현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로또 1등도 출근합니다>에선 로또 1등에 당첨되었지만 직장생활에 매진하는 직장인의 이야기이다. <삼겹나라 목살공주>에서는 걸그룹 출신 수제자와 함께 고깃집을 창업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며 <친환경 재벌이 되기로 했다>는 폐합성수지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을 운영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다. <프로페서>는 국문과 대학원생의 이야기를 다루며 <레전드 오브 노가다>의 주인공은 소위 말하는 노가다꾼, 즉 건설업 종사자이다.

 

 

출처=네이버시리즈

 

웹소설의 문법이란 어떻게 웹소설의 독자들에게 재미를 전달할 것인지 설계된 공식이다. 이를테면 수학에서 ‘근의 공식’ 안에 다양한 숫자를 집어넣어 각자의 해답을 도출해내듯, 빠르게 창작되는 웹소설 시장에서 독특한 소재를 모색하던 작가들은 곧 한국 사회 곳곳의 다양한 문화를 발굴하여 소재삼아 웹소설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웹소설은 대중의 편견처럼 젊은 세대들의 유희 문화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그들의 치열한 삶을 목격할 수 있는 지형도이자 컬트적 저널리즘의 공간이다.
웹소설 주인공의 시선은 언제나 위를 향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영역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로 시작하여 보다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끝없이 노력하고 마침내 성공을 쟁취한다. 이것은 웹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전적인 영웅서사의 구조이기도 하다. 단지 웹소설은 이러한 구조를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적인 ‘대중’의 이야기로 보편화시켰을 뿐. 어쩌면 문화 전반의 구성원이 위를 향해 볼 수 있다는 이러한 근대적 신념은 웹소설이 문화다양성과 만나는 접점이자 대중들에게 건네는 가장 다정한 세계관이 아닐까.

 

 

 

 


이융희
문화 연구자, 작가. 2006년 『마왕성 앞 무기점』으로 데뷔한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장르문학을 창작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국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장르 비평 동인 텍스트릿의 창단 멤버이자 팀장으로 다양한 창작·연구·교육 활동에 참여하며 현재 (주)지티이엔티 콘텐츠제작본부 소설 파트 팀장으로 근무중이며 한양대학교, 서울사이버대학교 등에서 장르문화 전반에 대한 강의를 주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