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과 해외의 '진짜 만남'(김윤하 음악평론가) 첨부이미지 : 2.png

*본 게시물은 ‘K-팝과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케이팝에 유독 쌍둥이처럼 따라붙는 단어가 있다. 바로 해외다. 한국이라는 국가의 국민이라면 모두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을, 마치 밖으로부터의 시선에 대한 인정욕구처럼 보이는 이 관계는 사실 케이팝의 역사만큼이나 유구한 연을 자랑한다. 케이팝 시조새라 불리는 그룹 H.O.T.와 S.E.S.에도 이미 해외를 향한 열망은 구석구석 묻어 있었다. 이른바 교포 출신 멤버가 그 증거다. 케이팝 초기 해외와의 접점을 만드는 방식의 중심에는 당시 한국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해외의 마지노선이라 해도 좋을 교포가 놓여 있었다. 여기에는 단지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장점 이외에도 ‘해외 출신’이라는 요소가 주는 세련미가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후 케이팝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해외와의 접점을 늘려나갔다. 무엇보다 ‘한국 시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산업적 판단이 컸다. 교포 멤버로 언어와 세련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이들이 다음으로 눈을 돌린 건 이웃 나라 일본이었다. 케이팝은 이곳에서 가수 보아를 통해 첫 성공을 거둔다. 성공의 기반에는 자신들의 문화를 존중할수록 쉽게 호감을 느끼는 일본 나아가 아시아 특유의 정서가 자리하고 있었다. 뛰어난 춤과 노래 실력뿐만이 아닌, 해당 국가에서 직접 먹고 자고 생활하며 익힌 언어와 문화 감각이 핵심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일본 진출 방식은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적용되는 케이팝의 상식이다.

오리콘차트 1위를 차지한 후 발표한 보아 2집 앨범 ⓒSM엔터테인먼트

조금만 업데이트가 늦어도 금세 뒤쳐지는 바쁘다 바빠 생태계 안에서 케이팝과 해외는 창조적 접점을 지속적으로 늘려 갔다. 케이팝 그룹 내부에서는 교포를 넘어 외국인 멤버를 택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한국인에게 특정 나라의 언어에서 풍습까지 가르치는 것보다, 해당 국가 출신의 인물을 영입해 케이팝 식의 집약적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 조로 만드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중국, 일본, 대만, 태국 등 한국과 지리적 심리적으로 가까운 동아시아 멤버가 순식간에 늘어났고, 동시에 진출을 노리는 국가도 아시아권을 넘어선 유럽, 영미권으로 가지를 뻗어나갔다. 언어는 춤, 노래만큼이나 중요해졌고 가수뿐만이 아닌 작곡가, 안무가도 다국적으로 구성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한국인 멤버가 한 명도 없는 니쥬나 블랙스완 같은 그룹이 자신의 음악을 케이팝이라고 소개하는 시대가 찾아오기도 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케이팝의 확장이었다.

 

JYP소속 일본 현지화 걸그룹 '니쥬' (ⓒJYP엔터테인먼트)

 

이러한 내부 확장이 가능했던 건 케이팝의 외적 성장이 기반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2023년 현재 케이팝은 기획, 제작, 홍보 모든 면에 있어 한국을 기준으로 삼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전조 증상은 2010년을 전후로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같은 일명 2세대 아이돌이 일본과 동아시아의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부터 시작되었고, 여기에 케이팝이 미국 시장에도 통하는 음악 언어라는 가능성을 꾸준히 노크한 빅뱅이나 2NE1도 힘을 보탰다.

2022년 코첼라페스티벌에서 완전체로 무대에 다시 오른 2NE1 (출처=산다라박 인스타그램)

 

꿈을 현실로 만든 건 두말할 것도 없이 BTS의 놀라운 성공이었다. 1960년대 비틀스를 앞세운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본 따 코리안 인베이전’이라는 표현까지 끌어낸 이들의 활약을 발판으로 케이팝은 지금 세계 시장을 추상이 아닌 구체적 목표로 삼아 달리고 있다. 멤버 개개인의 뛰어난 매력을 기반으로 폭발적인 그룹 시너지를 내는 블랙핑크에서 그동안 보는 음악에 치중되어 있던 눈을 듣는 음악으로 기꺼이 돌리게 만든 뉴진스까지, 이제 케이팝은 정해진 법칙이 아닌 각자의 개성과 방식으로 해외와 만나고 소통한다.

 

 

2018년 10월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BTS ⓒTIME

 

고무적인 건 그 동력의 한가운데 콘텐츠의 힘이 있었다는 점이다. 짧지 않은 시간 케이팝은 수없이 모습을 바꿔왔고 지금도 성장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변하지 않은 건 좋은 음악과 퍼포먼스에 대한 창작자들의 열정이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불러온 새바람을 타고 세계로 날아간 케이팝의 양 날개는 누가 뭐래도 트렌디한 음악과 강력한 퍼포먼스였다. 여기에 청춘과 사랑을 영원할 것처럼 노래하는 노랫말까지, 케이팝을 쿨하고 가치중립적인 문화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마 이런 요소들에 대한 호감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시장 크기의 한계에서 출발한 작은 도전이 쌓여 지금의 ‘세계와 호흡하는 케이팝’을 만들었다. 성공과 실패로 잘 다져진 토대 위에, 해외와의 ‘진짜 만남’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케이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합니다. 

애정에 기반한 글쓰기를 지향합니다.

KBS, TBS, <시사인>, <씨네21>, <아이즈> 등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출연하고 있습니다.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으로 활동중이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