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에 들어선 MZ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백세희 변호사) 첨부이미지 : 7.png

 

*본 게시물은 ‘K-아트와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미술시장에 들어선 MZ에게 변호사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
: 기존 미술시장의 관행과 MZ가 만들어내는 변화, 그리고 주의점
 

2022년 한국 미술시장 규모가 사상 처음 1조 원을 넘어섰다. 3년 전인 2019년에는 고작 3,811억 원이었는데, 불과 3년 사이에 2.7 배가 커졌다. 전국적으로 열리는 아트페어도 50여 개가 넘는다. 1주일에 한 개꼴로 열리는 셈이다. 근래의 폭발적인 성장은 이른바 MZ 세대로 불리는 젊은 구매층이 이끌고 있다.

MZ들의 이런 관심 덕분에 문화예술 전문 변호사를 자처하는 필자에게도 재미있는 제안이 종종 들어오곤 한다. 아트페어 무대에서 컬렉터(구매자)를 상대로 강연하거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미술품 구매의 주의점 같은 것을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이다. ‘선수들’끼리의 계약서를 주로 만지다가 이렇게 젊은 컬렉터들을 상대로 한 강연을 준비하다 보면, 새삼스럽게 기존 미술시장의 고유한 특성에 대해 놀라게 된다. 여기에서 미술시장의 폐쇄성과 변화, 그에 따른 주의점을 얘기해 보려 한다.

 

키아프 서울 2023 입구 ⓒkiaf SEOUL

 

미술품 구매의 주요 창구는 무엇일까? 최근 중개인 없이 직접 판매하는 젊은 작가들도 있긴 하지만 아직은 비교적 소수에 불과하다. 국내 미술시장의 절반인 5,021억의 매출은 갤러리가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절반은 경매와 아트페어가 나눠 갖는다. 그런데 아트페어는 여러 갤러리가 마치 백화점처럼 모여있는 곳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갤러리의 역할이 한국 미술시장의 75%를 상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미술품 판매는 갤러리가 주도하고 있다.
 
그간 갤러리가 컬렉터와 만나는 방식은 상당히 폐쇄적이었다. 최근 미술시장이 신규 컬렉터의 증가로 전체 파이가 커진 경향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뜨내기들이 미처 엄두 내지 못하는 억 단위의 작품은 이른바 ‘고인 물’ 시장에서 유통된다. 곧 억대 진입이 유력한 작가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보들은 인터넷에서 검색한다고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다. 중요한 정보는 공급자들인 갤러리가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트워크’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오랜 기간을 들여 정성 들여 갤러리와 관계를 쌓아 나가야만 한다. 미술시장에 입문한 MZ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부분이다.
 

ⓒ아트부산

 

우여곡절 끝에 정보를 찾아내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고 좋은 그림을 살 기회가 쉽게 오는 것도 아니다. 대기 명단에 오르기조차 힘들다는 뜻이다. 아트페어에 가 보면 이미 상당수의 그림에 빨갛고 동그란 스티커가 붙어있는 걸 볼 수 있다. 이미 팔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일반 입장에 오픈런을 해도, VIP 프리뷰에 오픈런을 해도 이미 빨간 스티커 일색이다. 어떻게 된 걸까.
 
인기 있는 작가의 그림은 상당수 아트페어가 열리기 전에 팔린다. 갤러리가 기존 고객들에게 출품 리스트를 미리 보여주기 때문이다. 즉 기존 고객이 우선권을 갖는다. 그림을 사기 위해서는 ‘기존’ 고객이어야 하고, 기존 고객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에 그림을 샀어야 한다. 순환적이며 모순적으로 보인다. 이런 단선적인 거래 방식은 MZ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다양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빨간 스티커의 주인이 되는 과정은 절대 녹록지 않다.

 

2022조형아트서울 행사 입구 전경. 오프닝 전에 관람객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시사뉴스

 

여기까지가 최근까지의 미술시장이었다. MZ들이 새로운 큰손들로 나타나기 전까지 말이다. 요즘에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먼저 중저가의 작품들을 공략하기 시작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갤러리들이 다루는 작품의 저변이 넓어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아트페어들도 단색화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작품들을 부스에 걸고 있다. 국내외의 젊은 작가, 소수자를 주제로 다룬 작품 등 만나볼 수 있는 작품들이 눈에 띄게 다양하다.
 
나아가 작품 구매를 위한 거래처도 갤러리와의 일대일 관계에서 벗어나고 있다. ‘아트 컨설턴트’ 또는 ‘아트 디렉터’라는 명함을 들고 다양한 채널에서 컬렉터와 만나려 하는 이들의 등장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다.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는 면에서 이들의 등장은 반길 만 한 일이다.
 
최근의 아트 디렉터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소개하고, 공동구매나 타임세일, 핫딜 등의 타이틀을 달아 마치 쇼호스트처럼 원화 또는 판화의 판매를 중개하기도 한다. 고객 유치 차원에서 작품 해설 모임 등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여러 활동은 특정 작가를 서포트하기 위한 목적부터 자기 자신의 구매 수수료를 취하기 위한 목적까지 매우 다양한 동기로 이루어진다. 사람을 많이 모을수록 유리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SNS의 인플루언서인 경우도 많다.

앞서 이들이 판매를 '중개'한다고 표현했지만, 이는 법률적인 의미의 중개는 아니다. 미술품 판매 중개는 특별한 자격 요건이 필요로 하지 않으며, 중개인으로서의 법률적인 책임도 지지 않는다.

 

ⓒ프리즈 서울

 

가령 부동산 거래와 비교한다면, 부동산 거래를 중개/컨설팅하기 위해서는 「공인중개사법」상 적법하게 공인중개사 자격을 취득할 것이 요청되고, 개업공인중개사가 부동산 사무소를 등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의무적으로 손해배상책임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이는 중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중개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인 안전장치다.

하지만 미술품 거래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제도적인 안전장치가 없다. 거래 금액에 따라서는 어지간한 부동산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고가의 미술품 거래도 왕성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미술품을 구매하며 벌어진 거래 사고의 경우 그 책임은 매수인 또는 매도인이 오롯이 지는 경우가 많다. 아트 디렉터, 아트 딜러, 아트 컨설턴트 등 구매를 유도한 이들에게 도의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법률적인 책임을 묻기 위한 요건은 까다롭다.
 
장기간 만들어 가는 대면 관계보다 온라인상의 공개된 정보 교류를 선호하는 MZ의 등장은 미술시장의 다양화를 끌어냈다. 정보를 얻고 구매처를 다양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선수’들이 많아지는 것은 일단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선택의 폭을 넓히는 다양성의 이면에는 자신이 오롯이 져야 할 책임이 늘어난다는 점을 잊지 말자. 미술시장에 발을 들인 MZ에게 필자가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백세희
변호사 겸 작가.
문화예술 분야를 주로 다룬다. 콘텐츠 IP 계약서를 숱하게
검토하다가 ‘과연 좋은 콘텐츠는 무엇일까’라는 고민에 이른다.
고민 끝에 미디어 속 소수자 묘사를 비판한
『납작하고 투명한 사람들』이라는 단행본을 냈다.
책은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