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전시를 말하다 (독립 큐레이터 박경린) 첨부이미지 : 6.png

 

문화다양성 인터뷰

문화다양성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독립 큐레이터 이자 전시 기획 및 출판을 하는 뉴포맷과 전시공간 리:플랫을 운영하는 박경린님을 만나봤습니다.

1. 안녕하세요. 큐레이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전시를 만들고, 책을 만듭니다. ‘뉴포맷’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동시대 문화의 흐름을 전시, 출판, 포럼, 교육 및 연구 프로그램 등 다양한 형식으로 담아내는 활동을 합니다. 뉴포맷의 구성원과 함께 시각예술이 가진 고유한 가치를 탐구하는 실험공간 ‘전시공간 리플랫’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 큐레이터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큐레이터가 되기로 ‘결심’을 한 것은 아니고 관심사를 따라 학업과 기타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시기획자로 자리를 잡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기,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소설과 역사 분야에 대한 책을 즐겨 읽었고요. 그러다 보니 미술사라는 학문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니 동시대 미술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관련 분야에 관해 공부하고, 글을 쓰고, 전시를 만들게 되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네요.

3. 독립 큐레이터라는 직업은 어떤 일을 주로 하는 것인지 또 갖춰야 할 소양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확하게 큐레이터는 학예연구사라는 말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전시기획자를 통칭해서 쓰는 것 같아요. 전시기획자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관련분야에 대한 학문적인 소양 또는 연구 능력, 행정 및 회계에 대한 이해(기획서 작성부터 정산까지), 무엇보다 소통(글쓰기와 말하기)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모난 둘이 정 맞는다> 전시 사진 ⓒ리:플랫 페이스북

 

4. 미술 뿐만 아니라, 공예, 자동차, 팝업 등 다양한 분야의 전시를 기획해오셨는데, 큐레이터로서 필요한 자질이나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방금 질문의 답변과 비슷하지만, 부가적으로 덧붙인다면, 하나의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전시를 기획하려면 무엇보다 호기심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료를 찾고 수집해서 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그림과 글)로 변환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5. 케이스스터디라는 출판 및 전시기획 회사를 5년 이상 전부터 운영하고 계신데요.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전시공간인 리:플랫까지 운영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정확하게는 회사 이름은 ‘뉴포맷’이고, 뉴포맷의 출판 임프린트가 ‘케이스스터디’입니다. 회사는 5년 전에 <핑거프린트>라는 사물학 잡지를 기업의 후원을 받아 만들다가, 함께 책을 만들었던 장유진님과 <슈퍼마켓>이라는 잡지를 만들고자 시작하였습니다. <슈퍼마켓>은 도시의 삶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여행 총서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독립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규모가 크거나 단체전을 주로 하다 보니 한 명의 작가에 집중할 기회, 그리고 신진 작가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 볼 기회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전시공간 리:플랫’은 개인전 3회 미만의 신진작가 또는 기성 활동 작가의 경우 새로운 시도를 하는 신작을 발표하는 것을 지원하는 공간입니다.
 
6. ‘멀티탭: 감각을 연결하기’, ‘내가 사는 너의 세계’ 등 장애 예술가들이 모인 전시를 기획하셨는데, 큐레이션을 담당할 때 고려했던 점은 무엇인가요?

‘장애’ 예술가가 아닌, 한 명의 ‘예술가’로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집중하고자 하였습니다. 다만, 전시 관람의 방법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무장애 가이드를 다양하게 제공하였습니다. 이는 다양한 신체와 문화적 조건을 가진 관람자의 편의를 배려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두가 다른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임을 새삼 느낄 수 있도록 한 기획자의 의도이기도 합니다.

7. 요즘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에서 배리어 프리에 대한 관심이 더더욱 뜨거워지고 있는데요. 배리어 프리 전시를 기획할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전례가 많이 없기 때문에 기획자의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인접 분야에서 시도한 가이드를 응용해보았습니다. 제도적으로는 무장애 가이드를 실현하게 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에 대한 행정절차의 선례가 없어 집행이 어려운 경우들이 간혹 있습니다. 기업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행정적인 부분은 수월하나 예산이 일반 전시보다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필요성을 납득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다만, ESG 경영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확대되면서 이전보다 환경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서울문화재단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페이스북 <내가 사는 너의 세계> 전시 스케치 영상 캡쳐

 

8. 전시 기획이란 분야에 다양하고 오랫동안 참여해본 경험을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완성된 최종 전시를 본 순간에 오는 감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누군가 예전에 이렇게 힘든 일을 왜 계속 반복하는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저에게 일을 의뢰한 분이었는데, 같이 전시를 해보니 녹록지 않으셨나 봐요. 전시를 만드는 거의 대부분의 과정이 어려운 것 같아요. 정해진 매뉴얼이 없고, 계속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정답이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해결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지만, 잠깐의 행복이 찾아오는 세 번의 순간이 있어요. 처음 전시 포스터가 나올 때, 전시 설치가 다 끝나고 오픈 할 때, 도록이 나올 때. 전시를 만든다는 것은 계속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이에요. 그런데 일의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는 않잖아요? 전시를 통해 함께 한 사람들의 상상력과 노력, 그리고 시간의 총체가 결과물로 남는다는 것이 뿌듯해요.

9.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해오시면서 창작자분들과의 네트워킹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특히, 배리어 프리 전시 같은 경우에는 소통이 더욱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 때의 박경린 큐레이터님만의 네트워킹 노하우가 있을까요?
배리어프리(무장애)를 지향하는 전시라고 해서 특별히 더 소통이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전시라는 것은 타인과 소통하기 위해 만드는 매체이다 보니 기획자가 ‘주최(주관)자-기획자-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시각화해서 표현하는 방법을 많이 연구하는 것 같아요. 네트워킹 노하우라기보다는 주최(주관)기관에서 전시를 진행하는 목적과 주제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진행하고요, 작가와는 반드시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작품을 살펴보아요. 하나의 주제가 정해지면 이에 대한 연구(공부)를 많이 하고 전문가분들에게 많은 자문을 듣는 편입니다. 이를 위해 특정 장르를 가리지 않고 관련된 분들이면 찾아 뵙거나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 편이에요. 일을 같이하면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니까요.

10. 미술전시와 다양성의 관계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전시에 어떤 다양성들을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이런 미술 속 다양성의 지속을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미술은 장르의 특성상 ‘시각’이라는 감각에 많이 기대고 있어요. 그래서 태생적으로 감각에 대한 비대칭적인 기울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여러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품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러한 장치들을 만드는 것 자체가 기획자의 의도를 잘 표현할 수 있기도 하고요. 미술에서 다양성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기획자나 행정가에게 필요하고, 이에 대한 연구와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해요.
예를 들어 제가 처음 전시 해설 가이드를 만들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이 태어났을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분에게 ‘색’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어요. 그래서 이러한 분들이 직접 쓴 여러 책도 찾아보고, 관련 전문가들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했어요. 돌아온 대답은 색을 그 자체로 표현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었어요. 우리가 초록색이라는 색을 본 적이 없어도 초록색을 상상은 할 수 있잖아요. 그분들의 상상 속에 초록의 이미지가 있고,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너무 당연한데 새삼 충격이기도 했어요. 우리가 같은 초록색을 본다고 해서 모두가 바라보는 색의 이미지가 같을까요? 결국은 우리 모두가 다 다른 존재이고, 이러한 다양성을 긍정하는 것이 개인의 삶에 대한 행복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으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11. 전시뿐 아니라 출판, 그리고 공간과 관련된 다양한 일들을 하시고, 꾸준히 전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시며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고 계신데요. 박경린 큐레이터님이 생각하는 (문화)다양성에 대한
정의는?

나(개인)를 나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박경린 (뉴포맷 대표. 전시공간 리:플랫 디렉터)
전시를 만들고, 책을 만든다. 
시각예술과 공예 및 미디어 분야를 전문으로 다루며,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동시대 문화의 흐름을 전시, 출판, 포럼, 교육 및 연구 프로그램 등 다양한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