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너머, 작가가 된다는 것 (정은경 문학 평론가) 첨부이미지 : 그림19.png

*본 게시물은 ‘K-웹소설과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예술은 제도 속에 허용된 위반의 양식이다. 금기와 위반이 허용된 유일한 제도로서의 예술은 따라서 사회에서 행복하거나 성공하지 못한 이들의 가장 강력한 목소리가 들끓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일면 루저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그 항의를 통해 성공이라는 월계관을 쓰고 제도 안으로 편입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모든 예술가들은 아니지만, 어떤 예술가들은 아웃사이더로서의 정체성으로서 인사이더가 되고 소망하고, 그래서 저주하기도 했던 ‘세속적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한다. 랭보나 보들레르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의 이상과 손창섭이 그러했고, 아일랜드의 민족주의를 거부했던 제임스 조이스가 그러했다. 물론 그것이 가능한 것은 예술에 주어진 허구라는 영역 때문이다. 하여 허구의 내용은 대체로 행복보다는 불행과 실패의 경험, 끔찍한 기억이기 쉽다.
  최근 해외에서 작가로서 성공한 한국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파친코』의 저자 이민진,  『마이너 필링스』의 캐시 박 홍, 『H마트에서 울다』의 미쉘 자우너,  『전쟁같은 맛』의 그레이스 M. 조, 그리고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과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이들이 조명받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대개 K-POP, K-컬쳐, K-콘텐츠 등의 한국문화의 세계진출, 혹은 소프트파워 등을 떠올린다. 이러한 성공스토리에 대한 기대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들의 허구에 담긴, 자전적일 수밖에 없는 진정성의 무게는 미국 주류가 아닌 비주류라는 아웃사이더적 정체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한인 작가를 대표하는 캐시 박 홍은 에세이집 마이너 필링스(2020년)에서 이러한 코리안 아메리칸 문학의 특성에 대해 ‘소수적 감정’(minor feelings)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소수적 감정’이란 “일상에서 겪는 인종적 체험의 앙금이 쌓이고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받거나 무시당하는 것에 자극받아 생긴 감정”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거듭되는 인종차별적 모욕과 태도를 접하면서도 “그건 전부 너의 망상일 뿐”이라는 말을 들을 때 발동하는 것으로 자기 감각을 의심하고 자기를 혐오하게 된다. 소수적 감정은 ‘피해망상, 수치심, 짜증, 우울’ 같은 감정선으로 이어진다.

 

ⓒ교보문고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전쟁같은 맛』(Tastes Like War: A Memoir)은 2021년 전미도서상 논픽션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22년 아시아·태평양 미국인 도서상을 수상했다. 이 책의 저자 그레이스 M.조(Grace M. Cho)는 뉴욕 시립 스태튼 아일랜드대학 사회학·인류학 교수로 백인 미국인 부친과 기지촌에서 일하던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워싱턴 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그녀는 열다섯 살 때 어머니의 조현병 발병을 경험하면서 어머니의 생애를 개인적·학문적 지표로 삼게 된다. 그레이스 조는 유년기에 보았던 “카리스마 넘치고 노련한 미시 정치가” “아버지 고향 농촌 마을에서 인정받기 위해 지치지도 않고 투쟁을 벌였”던 엄마와 사회적 죽음을 뜻하는 ‘미친 여자’ 사이의 간극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그 간극에는 기지촌, ‘차이나 돌(China doll-순종적인 젊은 아시아 여성)’, 전쟁 신부, 한국인이라는 타자성이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엄마가 이웃과 음식을 나누며 활달하게 사교를 나누었던 것은 그녀에 대해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며 암묵적으로 외국인 혐오를 발산하는 미국 사회에 투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고 ‘사회적으로’ 추방된 것이다. 그레이스 조는 조현병을 “권력의 눈밖에 나기에 관한 이야기”라고 명시하며 그녀의 엄마가 한국에서, 미국에서 이중으로 쫓겨났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파친코 Pachinko』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된 이민진은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고, 조지타운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했으나 건강 문제로 작가로 전환한다.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을 잇는 작가’라는 찬사를 받은 그녀의 유려한 문장은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Free Food for Millionaires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어 출판계의 주목을 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한인 디아스포라의 수난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주인공 케이시 한은 프린스턴 대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재원으로 로스쿨의 입학허가서를 받지만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투자증권 회사에서 보조직원으로 일한다. 그녀는 ‘법대와 상대와 의대, 이 세 가지만이 마치 속세의 성삼위일체처럼’ 반짝이는 한국계 이민자의 욕망을 거부하고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미국식 삶을 누린다. ‘똑똑하면서도 아름다운’ 여자이기를 꿈꾸는 이 서사에 대해 이민진은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매스컴이 보여주는 대로 ‘능력 있고, 성실하고, 온순하고, 교활하고, 음흉하고, 과대망상증이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한국계 미국 남자도 얼마든지 낭만과 정열을 가지고, 사랑을 나누고, 재미있기도 하다”라는 메시지는 케이시 한이라는 새로운 이민자 형상에 얹혀진다. 그러나 그 이후에 출간한  『파친코』는 이러한 의도를 벗어난다. 이민진은 일본계 이민자 남편을 따라 일본에 체류하게 되고, ‘재일 교포의 디아스포라’를 서사화한다. 백인과 다름없이 살아가고자 하는 이민자의 소망이 과거 이민의 역사와 투쟁을 추적하게 된 것이다.

 

ⓒ교보문고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계 작가가 보여주는 이러한 경로는 드물지 않다. 미국 사회 아시아 인종의 주변부적 삶을 다룬 『네이티브 스피커』로 문명을 얻은 이창래는 『생존자』를 통해 한국전쟁을 다루고, 민족적 정체성과 거리를 두고 작품활동을 시작한 재일 작가 유미리도 『8월의 저편』을 통해 외조부와 일제 강점기의 밀양을 다룬 바 있다. 2000년대 이전 한국계 작가들의 이러한 민족·국가적 정체성 탐색과 지향은 더욱 강하다. 이러한 경향성을 모두 민족주의라거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단순화시킬 수 없을 것이다. 캐시 박 홍은 소수민족계 작가들에 대해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의 소설을 보면 작가가 트라우마의 배경을 머나먼 고국 땅이나 고립된 아시아계 가족 내부로 설정하여 그들의 아픔이 미국의 제국주의 지정학이나 미국 내 인종주의에 대한 새삼스러운 증거가 아님을 확실히 해두는 작품이 많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과연 그녀의 말처럼 이들의 서사 경향성은 차별에 대한 변명이자 알리바이일까. 그렇다면 한국 독자들에게 이들 서사는 무엇일까. 곱씹어볼 일이다.

 

 

 

정은경
중앙대 공연영상창작학부 교수이자 문학평론가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저서로 『디아스포라 문학』, 『기도이거나 비평이거나』 ,
『영원의 기획』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