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 번역의 세계 (번역가 소제) 첨부이미지 : 그림20.png

문화다양성 인터뷰

문화다양성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K-문학 중에서도 시 번역을 활발히 하고 계시는 번역가 소제님을 만나보았습니다.

1. 안녕하세요소제 번역가님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글 쓰고 번역하고 편집하고 가르치는 소제입니다. 반갑습니다

 

2. 번역가라는 직업의 매력과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선택의 순간은 끊임없는 것 같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몇 시간 작업하고, 운동하고 샤워하면서도 곱씹고, 친구와 놀면서도, 수업 들으면서도, 편의점 계산하면서도 문득 생각나는 게 번역이라 자기 직전까지 퇴근이 어렵습니다. 분명히 피곤한 삶의 방식이지만, 번역이 딱 맞을 때의 그 희열을 쫓으면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축구선수가 슛해서 골 넣거나 뮤지션이 일렉기타 솔로 쫙 연주할 때의 느낌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어요.
원래 번역으로 돈 벌려면 비문학에 그나마 뚫린 길이 있거든요. 교과서나 논문은 전문용어 때문에 어렵지만,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무언가 배울 수 있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매뉴얼, 계약서, 카탈로그도 번역해 봤습니다. 
한번은 200장 넘는 카탈로그 중 퓨전 생활한복 제품설명을 영어로 옮겨야 했어요. 저도 전혀 몰랐던 한복 종류를 외국시장에 설명하고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a Korean-style coat with Korean ornaments 이런 식으로 엉망인 카피가 나와서 이 악물고 뜯어고치면서 작업한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번역만 한 게 아니라 영문 카피 에디터 역할까지 했네요.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그래서 역사소설보다 대충 쓴 글 번역하는 게 더 힘겨울 때가 있어요.

 

3. 해외에서 공부하시며 얻어진 다양한 관점으로 볼 때영미문학과 구분되는 k-문학의 고유성과 장점은?

작년 서울에서 뉴욕으로 이사하기 전, 주변 사람들이 ‘유학 가냐’ 하실 정도로 저를 내국인으로 보시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재밌는 오해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고 한국으로 갔다가 미국으로 다시 온 코리안 아메리칸 코리안입니다.
k-문학의 고유성은 젊음 그 자체 아닐까요? 타밀어, 중국어, 페르시아어에 비해 한국어가 훨씬 늦게 발명된 것도 있고요. 그리고 한류라는 어마어마한 문화경제적 현상과 같이 자라온 이민자 1.5~2세대, 외고/국제고/유학파 번역가들이 지금 시대를 잘 타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한국 문학이 문이었습니다. 한국으로 가는 문인 줄 알고 통과했지만, 그 문은 세계로도 열리는 회전문이었습니다.

 

소제 번역가가 번역한 책들 ⓒ소제

 

4. 한국어로 된 시를 영어로 번역하는 것에는 많은 지식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오셨나요?

인터뷰 광인입니다. 좋아하는 작가나 가수가 생기면 지면이든 방송이든 팟캐스트든 인터뷰를 열심히 찾아봐요. 텍스트 주의적인 번역가도 있지만, 저는 뼛속까지 덕후라서 그런지 무언가 좋아한다면 꼭 더 찾아봐요. 무어라도 더 건지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그런 습관이 시 번역에 특히 유용하더라고요. 자주 쓰는 단어나 말버릇을 알아내는 걸 좋아합니다. 참고로 은유 작가님 인터뷰 산문집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참여하면서 알게 된 특징이에요. (선생님, 저의 메아리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5. 한국 문학을 번역할 때단순히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의 특수성 등 다양한 점을 고려해야 할 것 같은데요문학 번역에 있어 문화다양성에 대한 고려가 중요한 이유를 경험을 담아 설명해주신다면?

편지 쓸 때 수신자를 염두에 두고 쓰는 것처럼, 번역도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이 글을 읽게 될 사람은 어떤 책을 좋아할까, 나랑 같은 영미권 작가를 좋아할까, 하루 종일 미래의 독자들을 상상하면서 작업해요. 한국에서 한국어로 읽는 독자, 미국에서 영어로 읽는 독자, 그리고 타국에서 영어로 읽는 독자 모두 취향에 맞는 번역을 만들어 낼 순 없겠지만, 전 세계에 흩어진 친구와 동료들을 떠올리면서 하면 어깨 힘이 풀리고 덜 외롭더라고요.
예를 들어, 이소호 시집 <캣콜링> 중 <오빠는 그런 여자가 좋더라>라는 시를 번역하면서 ‘오빠'를 어떻게 번역할까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단번에 이 오빠가 친오빠가 아니라는 것, 심지어 어떤 사람인지도 짐작할 수 있잖아요? 영미권에서는 제목의 oppa가 낯설 독자도 있고, 케이팝을 좋아하는 독자는 다른 지식을 가져올 테고, 온도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번역은 언어를 바꾸는 일입니다. 한국어를 영어의 틀에 끼워 넣으려고만 하지 않고 문화 혼종성을 키워나갈 수도 있습니다. 5년 전 번역서만 봐도 kimchi, gimbap 등 외국어라고 이탤릭체로 구분해서 표시됐었는데, 작년 tteokbokki가 제목에 들어가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안톤 허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권 번역가들이 이탤릭체 표기 거부를 선언했었기 때문입니다. 번역가가 한류에, 문화에, 언어에 끼치는 영향력입니다.
김치, 비빔밥, 한복만큼 한국적인 oppa가 동경의 대상으로 잘 알려졌으니, 이소호 시인이 그린 징글한 oppa도 같은 단어로 알려지길 바랐던 것 같아요. ‘얘들아 한국에는 다양한 oppa가 있단다…’

 

6. 번역하셨던 작품 중에서 한국 문학의 다양성을 엿볼 수 있던 작품이 있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언니’ 번역에 대해 <Not Exactly a Sister>라는 에세이를 쓴 적이 있습니다. 여성 작가 위주로 번역하다 보니까 ‘언니’라는 단어를 자주, 그리고 꽤 다양한 맥락에서 접했고, 거의 책마다 다르게 번역했습니다. 맥락이 다르니까요! 소설 속 등장인물의 친언니와 시의 화자가 추억하는 언니와 친구처럼 지내는 언니와 친구의 언니와 언니의 친구와 다 다르잖아요. 친언니는 sister, older sister, 혹은 sis. 이름처럼 불리는 언니는 unni. 친구 같은 언니와 언니의 친구는 이름으로 변경하고… 그렇다고 답이 있는 건 아녜요. 탁월한 번역은 단어 하나를 다른 단어 하나로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 하나를 둘러싼 맥락과 어원까지 무의식 어딘가를 통과해 튀어나온 또 다른 무언가일 겁니다.
에세이 마지막 부분에 이반지하님 인터뷰 영상을 인용했는데요, ‘언니’도 ‘오빠’도 아닌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이반지하 님의 에세이 <나도 한때는 언니들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추천해 드립니다.

 

7. 여러 번역가들이 모여 한국 시에 대한 웹진인 초과의 편집장이신데웹진 초과를 기획하게 하시게 된 배경과 웹진 초과의 비전을 알려주세요.

"하나만 있을 때는 그 하나가 전체를 대표하게 된다.
한영 번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2년차, 나는 외로웠다. 물론 주변에 선배 번역가들은 있었지만 나와 한국 시를 같이 덕질할 친구는 곁에 많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미국에서 『Into English: Poems, Translations, Commentaries』이라는 책을 사다 줬다. (고마워, 세스!) 이 선집에는 세계 각국의 시 25편이 실려있는데, 시마다 번역가 세 명이 옮긴 개별 번역본들과 심도 있는 비평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멋진 책을 읽으면 나는 복수성의 쾌락을 느꼈다.
그리고 한영 문학 번역의 역사가 얼마나 짧은지, 한국 시를 영어로 옮기는 번역가 풀이 얼마나 좁은지 새삼 깨달았다. 영어권 시장의 국수적인 자급자족 때문에 번역된 책이 재번역되고 채출간되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 아마도 서구의 정전(正典)으로 쳐주지 않는 책은 아예 번역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혼자 시집 전체를 번역하면서 특수함의 부담을 확실히 느꼈다.
『Into English』로 복수의 번역을 처음 접한 건 아니지만, 어쩐지 이 책의 가로 레이아웃을 접하고는 나만의 리믹스를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같은 형식을 빌려 오롯이 한국 시 번역으로 채운 우리만의 선집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래서 매 호 한국 시 한 편과 영어 번역본 여러 편을 소개하는 『초과』를 창간했다. ‘초과하다’라는 동사에서 따온 이름이고, 페이지를 장식하는 번역의 아름다운 초과를 상상했다.
다른 번역의 존재는 번역가가 좀 더 대담하게, 뻔뻔하게 번역할 수 있는 여지를 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번역이 많을수록 더 많은 놀이와 실험을 할 수 있으리라는 걸."

지난 3년간 참여한 번역가, 작가, 독자와 함께 쓴 <초과> 10 중 제 서문 일부에서 잘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텀블벅 후원, 해외 직구, 독립서점 (특히 서점극장 라블레, 종이잡지클럽, 위트 앤 시니컬) 덕분에 종이책으로 나올 수 있어서 더욱더 애착이 갑니다.

 

웹진<초과>의 최재원 시인 파트 ⓒ소제

 

8. 웹진 초과에서 한 이슈를 낼 때한 시를 선정해서 10여명의 번역가님들이 각자만의 색깔을 입혀 번역 작업한 걸 보여주신다고 알고 있습니다이러한 작업을 추구하시는 이유와 더불어 매달 어떤 기준으로 시를 선정하시나요?

맞습니다. 한국어 시를 알리고 (덕질하고) 싶은데, 저 혼자 번역하는 것보다 여러 번역본이 있으면 시 한 편의 매력을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문예지 운영할 돈은 없었고 지금도 없지만, 참여자에게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으로 논평과 주접 사이의 ‘답글’도 싣습니다.
1~9호 즈음 10여 명의 참여자가 있었고요. 10호부터 영어, 한국어 바이링구얼로 독자층을 넓히니 스케일이 커지면서 11호는 22명, 12호는 26명, 올해 연말에 나올 13호는 무려 60명 넘게 되었습니다. 독일어 번역도, 시를 만화로 각색한 번역도 있고요. 예전에는 <초과> 키우는 게 두렵고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세계 곳곳에 계신 <초과> 마니아분들(저 혼자 ‘초과즙’이라고 부릅니다)의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보답할 준비가 된 것 같아요.

 

9. 이혜미 작가이소호 작가, 최진영 작가 등의 작품 번역을 하셨는데번역할 작품을 결정하게 되는 선정 기준이 궁금합니다.

불과 2~3년 전이지만 ‘맨땅에 헤딩’ 시절이라고 부를 만한 게, 조금 읽어보고 좋으면 동서남북 어디 가는지 모르고 그냥 돌진했어요. 만만 다행히 좋은 선배들이 곁에 있었기에 20대 초중반 그 당시 쏟아져 나온 모든 에너지가 증발하지 않고 번역서 세 권으로 남겨졌지요.
이혜미 시인의 경우에는 과제로 시작했습니다. 시 번역 수업에서 번역해 보지 않은 작가를 찾아서 몇 편 해보라고 했고, 그날 도서관 가서 책 쌓아 놓고 반나절을 보냈어요. 그날 운명적으로 잡고 직감적으로 선택한 시집이 <뜻밖의 바닐라>고요. ‘이것이 내 데뷔작이다.’라고 생각했다면 부담스러워서 못 했을 텐데, 결국 과제였기에 배우는 자세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므로 다방면으로 미숙했던 저를 그대로 받아주신 이혜미 시인께 아주 감사해요. 번역서가 2020년 코로나 절정에 나와서 뒤늦게 작년 가을 런던 북투어를 같이 했는데, 일주일 같이 여행하고 낭독하고 놀면서 감사함을 조금 되갚을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요즘은 허수경, 정세랑, 김언희, 문보영, 김연재 작가님 단행본 번역출판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의뢰받기도 하는데, 번역가도 배우처럼 전 작품과 비슷한 계열의 책이 들어올 때가 많아요. 때로 심리적으로 덜 괴로운 작품하고 싶다고 징징대기도 하지만 어쩌겠어요. 번역가마다 강점이 있고, 제 강점은 타인의 괴로움과 저의 괴로움의 음을 맞추어 울림을 내는 것 같아요.

 

이혜미 시인과 다양한 협렵자와 런던 북투어 낭독회 ⓒ소제

 

10. 번역이 막힐  해결하기 위해 작가와 소통을 해보신 경험이 있다면예시를 들어 말씀해주세요.

해외 레지던시 초대 받은 김연재 극작가의 <매립지>와 <낙과줍기>를 지난달에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첫 희곡 번역이었는데, 초고를 인쇄해 시인 친구와 함께 런스루해보고 중간중간 연재 님과 영상으로 피드백 주고받고 다른 시인 친구와 서점에서도 낭독했어요. 희곡의 재미를 나눠준 연재 님과 새벽과 브론티한테 고마워요.

 

11. 소제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요?

다리나 발굴이나 상실이나 연주나 유명한 번역 관련 은유가 이미 넘치는데, 요즘에는 성대모사 같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스꽝스러운 번역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작가의 의도부터 말습관까지 잘 헤아려 도착어로 재구성하려고 하는 것이죠. 
동시에 언어로 만들어진 시의 모든 점을 다른 언어로 온전히 옮길 수 없기에, 핵심을 극대화함으로 좋은 번역이 나오기도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김언희 시와 문보영 시 낭송을 같은 어투와 태도로 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물론 너무 욕심내면 안 되지만, 너무 몸을 사려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악기 연주처럼 언어를, 목소리를 연주하려면요.
 

12. 문학의 장르 중에  번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신데 번역에 매력을 느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답이 없다는 점이 좋습니다. 교제 번역에서는 어느 정도 틀이 있잖아요. 최대한 ‘무난’하고 ‘중립적’이고 ‘올바른’ 문체를 사용해야 하고요. 하지만 누가 교과서처럼 말해요. 말장난, 말더듬, 사투리, 억양, 비속어, 밈을 통해 언어의 다양성과 유동성을 드러내는 것을 즐깁니다. 요즘 희곡에 흠뻑 빠진 이유 중 하나도 희곡 특유의 구어인 듯 문어인 듯한 아슬아슬함입니다. 

 

13. 향후 K-문학과 그 번역의 세계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 또한 번역가 한 명일 뿐이고 기존 시장과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많지만, 운 좋게 K-문학의 흐름을 잘 타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최대한 재밌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초과>를 무예산 계간지 웹진에서 더 단단한 무언가로 만들고 있고, 독립출판사 인공위성+82과 협업해 양승욱 사진작가의 지난 10년 동안의 작업과 생각을 담은 사진집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 뉴욕에서 K-문학 혼성그룹으로 데뷔합니다. 그룹명은 뉴라인스(Newlines)이고 멤버는 
문보영 김선오 김리윤 소제 이유나 김지선입니다. 곧 인스타로, 유튜브로, 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소제
시인, 번역가, 《초과》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 이혜미 시집 『뜻밖의 바닐라』 Unexpected Vanilla (Tilted Axis Press, 2020), 이소호 시집 『캣콜링』 Catcalling (Open Letter Books, 2021), 최진영 장편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 To the Warm Horizon (Honford Star, 2021) 등 있다. 첫 책으로 2021년 National Translation Award in Poetry 와 2022년 Sarah Maguire Prize for Poetry in Translation 최종후보에 올랐다. smokingtigers.com/soj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