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문학이 온다(김봉석 문화평론가) 첨부이미지 : 그림21.png

*본 게시물은 ‘K-문학과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무엇인가 하나에 흥미를 느끼고 빠져들면, 처음에는 관심이 없던 주변의 것들에도 서서히 시선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K팝과 한국 영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다 보면 작품에 연결되거나 내재된 소설과 시, 공연, 웹툰 등 여타의 문화적 요소에도 흥미를 느끼게 된다. 요즘 K문학의 인기가 올라오는 이유의 하나다.

 
일본에서는 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 나온 하태완의 에세이 <모든 순간이 너였다>, <도깨비>에 나온 김용택이 고른 시선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남자친구>에 나온 나태주의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방영 후에 화제가 되면서 갑자기 책도 팔리기 시작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하다 보니, 그들이 작품 속에서 보고 들은 책과 음악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K문학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소설, 시, 에세이 등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은 단지 영상물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K팝과 영화 등이 세계 문화시장의 강자가 되기 전에도, 이미 한국 문학은 해외에서 다양하게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부커상을 수상했다. 2022년에는 정보라의 환상소설 <저주토끼>와 박상영의 퀴어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이 함께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올해는 천명관의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 <고래>가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저주토끼> ⓒ래빗홀, <고래> ⓒ문학동네

 

한국에서 2004년 출간된 <고래>가 뒤늦게 해외에서 조명받은 것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야 주목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세계적인 관심과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그동안 영어로 번역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에 영미권에서 번역되는 한국 소설은 1년에 10권을 넘기 힘들었다. 하지만 한국문학이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시작하면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하여 많은 한국의 문학작품들이 인기를 얻었고, 다양한 상을 받고 있다. 2022년 번역원 지원을 받아 해외에서 출간된 작품은 150여종이고, 23년에는 200종 이상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문학성을 지닌 정통소설만이 아니라 장르소설과 에세이 등으로 다양하게 K문학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백세희의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출간 3개월만에 15만부 이상이 팔렸고, 하완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도 인기를 끌었다. 김혜순, 이성복의 시만이 아니라 산문집도 번역되었다. 대만에서는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 이미예의 <딜러구트 꿈 백화점>, 나태주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등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2018년 대만 최대 전자책 사이트 리드무에서 전자책부문 1위를 차지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일본어판 표지(출처=교보문고)

 

정보라의 <저주토끼>는 17개국에 판권 계약이 되었다. 김초엽, 배명훈 등의 SF 소설은 매년 2, 3권씩 번역이 되며 전 세계로 팔리고 있다. 아시아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아몬드>의 작가 손원평의 <서른의 반격>은 2022년 일본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에 선정되었고, 편혜영의 <홀>은 2018년 장르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미국의 셜리잭슨상을 수상했다. 해외에서는 기존의 리얼리즘 소설과 SF, 로맨스, 환상 등의 장르소설에 더해 그래픽노블과 웹툰 등도 K문학의 주변 장르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만화상으로 평가되는 하비상을 <풀>로 수상한 김금숙의 <기다림>과 <함께> 등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K문학은 국가와 장르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재일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재미 한국인 작가인 이민진이 쓴 <파친코>는 미국과 한국의 제작진이 함께 만든 애플TV+의 드라마로 제작되어 더욱 화제를 모았다. 이미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였던 소설을 영향력있는 플랫폼의 드라마로 제작하여, 국경을 뛰어넘는 놀라운 파급력을 갖게 된 것이다. 한국계인 미셸 자우너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어머니를 떠올리며 쓴 소설 <H마트에서 울다>도 세계적인 화제작이다. 최은영의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은 김태희와 임지연이 출연하여 인기를 끌며 해외에서 원작에 대한 궁금함이 일었다. 정통 문학의 작가들도 이제는 SF, 범죄물, 환상소설 등의 장르적인 요소를 차용하며 자주 영상물로 각색되고 있다.

이전에도 인기였지만, BTS의 슈가가 읽은 책으로 화제가 되면서 더욱 많이 팔려나간 손원평의 <아몬드>처럼 셀리브리티가 읽거나 언급하면서 화제가 되는 책도 있다. 소설 자체의 작품성과 함께 다른 장르의 요소가 얽히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작품의 평가가 높아지는 상승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문학이 단순히 영상이나 음악의 원천 스토리, 영감을 주는 매체로만 존재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K문학은 세계의 대중이 소비하고 감상하는 거대한 문화의 일부로서 활발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더불어 자신의 영역도 강화하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영화와 소설, 음악과 시 등 K컬처의 샘은 결코 마르지 않고 있다.

 

 

 

김봉석
대중문화 평론가,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 소설, 만화를 좋아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자연스레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내 안의 음란마귀』 『좀비사전』 『탐정사전』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