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없는 케이팝? 다양성을 향한 케이팝의 고민(김영대 평론가) 첨부이미지 : 그림27.png

*본 게시물은 ‘K-팝과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케이팝이 세계를 하나로 묶어내고 있다. BTS의 팬 아미만 해도 어림잡아 수천만에 이르니, 이제 글로벌 케이팝 네이션을 선포해도 과장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글로벌리즘이라는 것이 단순히 물건을 내다 판다는 의미는 아니며, 모든 것이 같아진다는 ‘문화 동질화'라는 의미로만 이해해서도 안된다. 경계를 넘어 하나가 되는 동시에 저마다의 정체성과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야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케이팝을 둘러싼 담론은 돈으로 환산되는 국제적 성공, 쉽게 말해 얼마나 많은 나라에 얼마나 많은 앨범을 팔아치웠냐 정도의 의미분석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류'의 틀을 넘는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사실 그동안 케이팝은 현대 대중음악의 본고장인 미국이나 아시아 대중음악의 맹주 일본 등 유력한 세계 시장에 그 이름을 알리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정도를 그 사명으로 여겼고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글로벌리즘, 혹은 그에 수반하는 케이팝의 의미나 정체성, 혹은 케이팝 속의 문화적 다양성 같은 키워드등을 떠올리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케이팝은 이제 선진 팝 시장을 따라갈 뿐인 팔로워의 입장에서 세계 대중음악의 트렌드를 끌어나가는 리더의 위치로 격상되었다. 방탄소년단이 세계 최고의 그룹 위치에 오르며 케이팝은 대중음악 산업의 중심에 급격히 접근하기 시작했고 이제 서구인들조차 ‘걸그룹'이라는 단어를 보며 네명의 아시안 여성인 ‘블랙핑크'의 이미지를 대표 이미지로 떠올리는 시대가 되었다.
 
케이팝에서 ‘다양성'이라는 것은 하나의 상업적 전략이었다. 그것을 이제 우리는 ‘현지화 전략'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고, 이는 케이팝의 국제적인 성공을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 1세대 아이돌 S.E.S.부터 4세대 아이돌 뉴진스에 이르기까지, 외국인 혹은 한국계 외국인 멤버를 활용해 세계 시장을 공략하려는 노력은 케이팝의 가장 보편적인 전략으로 자리잡아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인류는 20세기를 살아오면서 민족국가 단위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왔고, 이 같은 인식의 틀을 기반으로 인종이나 언어 혹은 국적 자체가 소통의 장벽이 되는 현실앞에 주변부의 음악이었던 케이팝을 현지에 안착시키기 위한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다국적' 그룹을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소위 ‘현지' 멤버를 보유한 케이팝 아이돌들은 현지 시장에서 로컬 그룹들의 인기를 뛰어넘는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태국에서의 블랙핑크가 그렇고, 일본에서의 트와이스가 그렇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 그룹은 현지에서는 단순히 케이팝 그룹이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 케이팝 그룹이 되고 있다.

 

 

(좌)블랙핑크, (우)트와이스 (출처=YG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이미 또 다른 단계도 진행중에 있다. ‘다국적'을 넘어서 현지인들로만 이루어진 케이팝 그룹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위 ‘한국인 없는 케이팝'이 그것이다. 한국인이 없고, 한국어를 쓰지 않으며, 심지어 한국 시장에서 활동하지 않는 이 그룹들을 우리는 케이팝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은 ‘다양성'을 호소하며 해외시장에 뻗어나간 케이팝이 스스로 불러온 불가피한 미래이다. 케이팝이 철옹성과 같은 미국발 글로벌 팝 음악 질서에서 다양성을 증거하는 유쾌한 증거라면, 이제 케이팝은 케이팝 세계 안에서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할 새로운 시기를 마주하고 있다. 필리핀, 태국, 중국 등에서는 이미 케이팝의 훈련 시스템과 음악 제작방식을 그대로 이식한 ‘유사' 케이팝 실험이 성공리에 진행되고 있다.

 일본 그룹 XG는 케이팝 그룹을 ‘선배님'이라 부르며 범-케이팝 시장을 타겟팅하고 있다. 이 역동적 변화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케이팝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이 같은 복잡한 상황에서 진짜 리더가 될 수 있는걸까?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외국인들로만 구성된 케이팝 걸그룹 (왼쪽부터) VCHA(비춰), 블랙스완, XG
(제공=JYP엔터테인먼트, 디알뮤직, 엑스갤럭스)

 

문화는 소통이다. 수출이 있다면 수입도 있어야 하고, 그 같은 양방향의 소통 속에서 진정한 다양성이 확보된다. 사실 케이팝은 이 부분에 있어서 게을렀다. 한때 십대들의 전유물이었던 케이팝이 이제 30-40대까지를 포용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임에 틀림없지만 다양한 문화권과 계층, 인종을 포괄하는 산업과 문화로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그 같은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때 진정한 의미에서 ‘케이팝 글로벌리즘'의 미션도 완성될 것이다.

 

 

 

 

김영대 
음악평론가이자 문화연구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음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2007년부터 미국 시애틀에 거주하면서 10년 넘게 미국팝 시장의 흐름과 K팝의 동향을 관찰하고 연구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 필명인 ‘투째지toojazzy’로 음악평론을 시작해 [음악취향Y] 등 다양한 온라인 매체에서 대중음악 칼럼을 써왔다. 지은 책으로는 『90년대를 빛낸 명반 50』(공저, 한울, 2006),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공저, 한울, 200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