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으로 읽는 케이팝의 위기와 혁신 (태양비 케팝 저널리스트) 첨부이미지 : 그림26.png

*본 게시물은 ‘K-팝과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케이팝은 핫하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지어 케이팝 웹소설을 쓰고, 케이팝에 대한 글을 쓰는. 그야말로 커리어를 케이팝에 걸은 필자조차 놀래킬 정도로.
 
최근에 있었던 일을 하나 나누고 싶다. 카페에서 업무 중인데, 가게 앞에서 한 외국인 여성이 길을 헤매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주소를 알려 주었다. 에프엑스도 노래하지 않았는가. ‘땀 흘리는 외국인은 길을 알려주자’.
 
그녀는 이란 여성이었다. 한국 드라마와 한국 발라드를 좋아한다고 했다. 최애 가수는 임재범, 이소라, 그리고 박효신. 요즘 한국의 20대에게도 낯설 수 있는 예전 가수를 좋아하는 외국인을 서울 한복판에서 만날 수 있는 요즘이다. 이게 케이팝의 영향력이다. 그녀는 ‘눈의 꽃'을 좋아한다며 카페 주인에게 곡을 신청하고 총총 카페를 떠났다.
 
어쩌다가 케이팝은 이다지도 큰 성공을 할 수 있었을까? 처음 서태지와 아이들과 H.O.T가 케이팝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한국은 대중음악의 변방이었다. 혁신은 언제나 변방에서 나오는 법이다케이팝은 다른 음악과 달랐기에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세계 대중음악 씬의 다양성에 기여한 것이다.
 
케이팝의 성공 비결은 변별력'이었다. 케이팝은 힙합부터 록, 일렉트로닉, 심지어 클래식 음악까지. 온갖 장르를 뒤섞는다. 소녀시대의 I Got A Boy는 10초마다 장르를 바꾼다. 글로벌 블록버스터 보이밴드 장르를 개척한 엑소와 BTS는 보이즈투맨과 같은, R&B 보컬그룹과, 엔싱크와 같은 춤추는 보이밴드, 잭슨 파이브와 같은 모타운 밴드 등. 미국에서는 이미 잊혀진 장르를 적극 가져와 거대한 성공을 얻었다.
 
케이팝은 메시지 또한 독특했다. 미국 팝 음악의 주제는 매우 획일화되어 있다.  총, 마약, 그리고 성공과 그에 따라 치러야 할 대가 정도가 떠오른다. 독특한 주제는 라디오에서 틀어주지 않는다. 방탄소년단의 ‘Dynamite’와 같은 건강한 메시지. 팝음악 시장에서는 찾기 힘들다. 인류애, 우정, 노력과 같은 한국 케이팝 특유의 (한국 사람 입장에서 뻔한) 주제가 되려 글로벌 대중음악 시장에서는 신선하게 들릴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케이팝은 세계에 대안적인 남성성을 제시했다. 미국 문화에서 정의하는 남성성은 매우 편협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모든 남성은 매우 마초적이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문화랄까? 성적으로 리스크를 져야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하고. 패션은 지루해야 한다. 메이크업이나 염색은 남자답지 못하다. BTS가 이 모든 기준을 파괴했다. 케이팝 남자 아이돌은 남성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다고 생각한다.
 
케이팝이 성공하면서, 서구권에서는 케이팝에 대한 다양한 우려를 표했다. 우선 걸그룹에 대한 편협한 미적인 기준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또한 아이돌의 정신 건강에 대해 우려하기도 했다. 모두 일리가 있는 지적이고, 반드시 개선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미국 또한 자신만의 미적인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미국식 보디빌더의 몸은 결코 자연스러운 미적 기준이 아니다. 정신 건강 문제 또한 케이팝만의 문제는 아니다. 마이클 잭슨부터 프린스, 그리고 아비치까지, 수많은 스타들이 정신적인 문제로 안타깝게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케이팝의 위기기도 하다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다양성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아이돌 그룹 기획은 경직되고, 공식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느낀다. 아이돌 음악 좀 듣는 사람이라면 케이팝 음악의 공식이라 생각되는 구성이 있을 것이다. 후킹한 인트로. 빠른 랩. 격렬한 춤. 강렬한 고음…. 물론 훌륭한 음악이지만, 슬슬 케이팝은 ‘읽히기’ 시작했다.
 
애초에 전 세계 시장이 케이팝에 열광한 이유는 팝과 뭔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고정된 주제. 틱톡 등 숏폼에 최적화된 훅. 비슷한 창법과 장르까지. 팝은 점점 뻔해졌다. 그런 팝 음악에 지친 이들이 케이팝이라는 새로운 관점의 아티스트, 새로운 관점의 뮤직비디오, 새로운 관점의 무대에 열광했다.
 
하지만 케이팝 또한 자기복제를 반복한다면. 그래서 세계 음악의 다양성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결국 언젠가는 끝이 다가오고 말 것이다. 진화론에 입각해 말해보자면. 결국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면 그중 가장 적합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다. 따라서 내부에서 다양성이 없고 획일화된 음악 장르는 장기적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적어도 한국에서 케이팝 열풍이 이전에 비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글로벌 시장 집중뿐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의 부재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혁신이 중요하다. 그리고 (쓴소리를 계속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케이팝에서는 아직도 다양한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엑스디너리 히어로즈 ⓒJYP엔터테인먼트

 

 
케이팝의 공식을 깬 대표적인 그룹으로 나는 '엑스디너리 히어로즈'를 들고 싶다. JYP에서 제작한 6인조 록 밴드다. 주로 펑크, 메탈 장르에 아이돌 음악을 결합한 음악을 하는 팀이다. 비주얼은 마치 팀 버튼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고딕풍이다. 일단 그들은, 다른 아이돌과는 전혀 다르다. 새로운 시도다. 그래서 주목하고 있다.
 

또 하나 예를 들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바로 뉴진스다. 또 뉴진스냐고? 이해한다. 심지어 이 칼럼 시리즈에서도 뉴진스는 다루었던 적이 있으니까. 모름지기 성공한 혁명은 시시한 법이다. 하지만 성공한 혁명은 언제나 짜릿하다.

뉴진스는 케이팝 걸그룹의 모든 틀을 부쉈다. 아이돌 음악이라고 하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구성이 있다. 짧은 전주 - 고음 훅 - 랩 - 다시 고음 훅 - 브릿지 - 훅 등. 뉴진스는 이 틀을 아예 부숴 버렸다. 랩이 나올 법한 타이밍에 랩이 나오지 않는다. 고음이 나와야 할 부분에서 힘을 빼버린다. 춤은 정교하지만, 합이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그야말로 모든 부분이 기존에 대한 반항이자 혁신이다.

 

 

뉴진스 ⓒ어도어

 

뉴진스의 음악 또한 평범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정글부터 저지클럽까지. 한국 아이돌 판에서 전혀 주목된 적이 없던 장르의 음악의 연속이다. LL COOL J의 전성기와 일본 아이돌 걸그룹 SPEED의 좋았던 시절을 연상시키는 쿨한 뮤직비디오 ‘Attention’은 또 어떤가? 250의 강렬한 전자음악부터 힙합씬의 제왕인 빈지노가 써준 가사까지. 뉴진스의 음악에는 늘 예상외의 제작진이 참여해 새로운 결과물을 보여준다.
 
마케팅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곡의 뮤직비디오를 1개 이상 만들어서 각 영상의 조회수를 줄여버린다. 아무도 모르게 뮤직비디오 계정을 파서 팬들이 발견하기를 기다린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하는가? 뉴진스의 모든 마케팅은 파격이었다. 심지어 코카콜라와 함께 만든 곡 ‘Zero’까지. 뉴진스는 PPL마저도 혁신을 일으켰다.

 

케이팝이 계속될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케이팝의 성공에는 늘 고정관념을 부숴버리는 혁신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최초로 케이팝을 창조해 낸 이수만 프로듀서부터 본격적인 흑인음악을 가져온 박진영, 누구보다 확고한 뮤지션쉽과 음악적 색깔을 유지하면서, 또한 멤버들의 자율성을 보장해 방탄소년단을 제작한 방시혁, 그리고 자신이 속해있던 SM이 만든 모든 룰을 부숴버린 민희진까지. 이런 과감한 혁신이 있는 한, 앞으로도 당분간은 케이팝이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태양비
케이팝 웹소설 작가이자 케이팝 저널리스트. 케이팝에 관한 다양한 글을 시사 주간지 및 음원 사이트 등에 연재했다. 카카오 스토리에서 웹소설 『회귀가왕』을 발표했으며, 지은 책으로 『케이팝의 시간』 등이 있다. 결국은 케이팝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