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과 AI, 뜨거운 온도의 입장들 사이에서(이재민 만화 평론가) 첨부이미지 : 그림12.png

*본 게시물은 ‘웹툰과 AI’를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인공지능은 단연 2023년 가장 뜨거운 키워드다. 하반기가 된 지금이야, 그럴 수밖에 없던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지나오는 동안에는 아주 뜨거운 입장들이 날카롭게 맞섰다. 보통 이런 때에는 ‘뜨거운 논의가 이어졌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논의’가 아니라 ‘입장’이라고 굳이 적은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l  웹툰계의 뜨거운 입장들
 
  그 중에서도 가장 뜨거웠던 건 아무래도 창작계와 관련된 이슈들이다. 특히 웹툰계가 뜨거운 입장들이 만나는 교차로가 됐다. 웹툰이 교차로가 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인터넷 문화와 밀접한 웹툰은 최근에도 박태준 작가의 <외모지상주의>에 달리는 ‘소갈비찜’ 댓글에 반응하는 독자처럼 일종의 ‘놀이’의 하나로, 웹툰이라는 매체에 독자가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가 완결되면서 등장한 한 문장이 “넌 이미 댓글을 달고있다”라는 점만 봐도, 댓글을 통해 독자와 작가가 소통하는 시대가 끼친 영향력은 무시하기 힘들다.
 

ⓒ유튜브 채널 박태준만화회사


  개인 창작자가 만드는 것이 웹툰이라는 인식을 가진 독자들은 인공지능, 그 중에서도 생성형 인공지능 도입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독자와 일부 작가들의 입장은 “인공지능은 ‘원전’을 알 수 없고, 작가들의 그림을 무단으로 학습하여 기본적으로 저작권 침해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고, 인공지능을 연구하거나 개발하는 쪽에서는 “학습을 위한 ‘공정사용’”이라고 주장했다. 결코 좁혀질 수 없는 ‘입장’이 맞부딪혔다.
 
  인공지능 사용 의혹으로 곤욕을 치른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은 ‘제작’이나 ‘창작’의 측면에서 인공지능이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통한 후보정을 했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으로 생성된 작품’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유료 독자의 별점 평점은 9점 중반이지만, 무료 회차의 경우 최저 2점에서 5점을 겨우 넘는 수준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의 별점이야 말로 “인공지능 사용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와 “작품이 재미있으면 됐다”는 ‘뜨거운 입장’들의 교차점이 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인공지능을 사용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보는 사람은 재미있으니 좋게 평가하고, 별점을 낮추는 사람은 ‘인공지능을 사용했다고 생각되니’ 별점을 낮추고 있다. 각자 입장들의 뜨거움에 분노해서, 또는 뜨거움에 들 떠있다 보니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

ⓒ네이버웹툰



l  입장들 사이에서 정해져야 하는 것
 
  이렇게 뜨거운 입장들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플랫폼들이 타깃이 됐다. 네이버 웹툰에는 아마추어 플랫폼인 ‘도전만화가’에 “AI 웹툰 반대” 온라인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네이버 웹툰은 공모전에서 인공지능 사용을 금지했지만, 카카오는 ‘인간이 그린 웹툰 공모전’을 개최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AI웹툰을 표방하는 플랫폼이 등장하기도 하는 등, 입장이 정리되고 논의로 발전하기 전에 사건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때문에 오히려 인공지능 이슈에서 어떤 지점이 첨예하게 대립 중인지를 놓치게 되는 역설이 생긴다. 인공지능 이슈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다양한 측면을 놓치게 된다면 오히려 소외될 수도 있다.
 
  지난 6월 23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개최한 ‘AI X Data Privacy’ 컨퍼런스에서는 인공지능과 개인정보 보호가 메인 주제였다. 6월 14일 통과된 EU 의회의 AI법(AI ACT)의 주요 논의 다섯가지는 1) 감정인식 인공지능 금지, 2) 공공장소에서 실시간 생체인식 및 예측치안 금지, 3) 소셜 스코어링 금지, 4) 생성형 AI의 저작권 있는 자료 전면 금지 및 원천 콘텐츠 출처 명기, 5) 소셜미디어 추천 알고리즘 규제 로 다섯가지 중 개인정보와 관련된 내용이 3가지, 생성형 인공지능과 관련된 점은 1가지에 불과했다.

ⓒ이재민 평론가 제공 사진

 

  생성형 인공지능과 관련한 문제가 ‘덜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웹툰에서의 인공지능은, 창작에만 영향을 줄까? 모르긴 몰라도 답은 ‘아니다’일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이 뜨거운 입장들 사이에서, 인간의 사회는 점차 답을 찾기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들이 내뿜는 열기에 지치거나, 아니면 뜨거움에 들떠서 이 과정을 놓친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해프닝이 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선언이나 정답이 아닌 과정이다.

 

 

 

 

이재민
만화평론가. 한국문화문화연구소 소장
만화 만드는 것 빼고’ 만화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하는 사람. 2017년 만화평론공모전에서 수상해 만화평론가로 활동중이다. 웹툰 전문웹진 ‘웹툰인사이트’ 에디터, 한국만화가협회 부설 한국만화문화연구소에서 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