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문학을 세계로! 한국문학 번역가 이야기 (번역가 안톤 허) 첨부이미지 : 그림7.png

문화다양성 인터뷰

문화다양성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지난 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됐던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의 번역을 맡아 화제가 됐던 안톤 허 번역가님을 만나봤습니다.

 

1.안녕하세요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문학 번역가 허정범입니다.
신경숙, 황석영, 정보라, 박상영, 전삼혜, 정영수 등 우리나라 최고의 문인들의 글을 영어로 번역하고 있으며 단순히 번역에만 머물지 않고 해외 출판과 홍보 단계까지 인도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제가 쓴 영문 소설, 그리고 한국 소설이 미국 출판사를 통해 출판됩니다. 번역과 창작의 경계, 한국어와 영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저의 목표 아닌 목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진 제공=안톤 허

 

2. 원래는 한영 동시통역사로 활동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문학번역가로 직업을 전향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년 넘게 통번역 계에 종사하면서 누구든, 어느 분야든, 어떤 의뢰인이든 통번역할 수 있다는 자부심 혹은 오기로 일해왔습니다. 문학은 제가 항상 하고 싶었던 것이고, 문학 번역은 그러한 욕망과 오기에서 자연스레 연결되었을 뿐입니다.
영한 번역이든 한영 번역이든 똑같이 쉽거나 어려운데, 적절한 문학적 소양을 갖춘 한영 번역가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에 비교우위를 따라 한영 번역 쪽으로 문학 번역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3.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영국 부커상은 작가와 번역가에게 공동으로 수여되는데요원작만큼 번역도 중요하다는 뜻인 것 같아요한국 문학을 번역할 때 중점을 두거나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다면?

한국 문학 작가들은 영미권과는 달리 세계에서 가장 문맹률이 낮은 나라이자 금속활자의 종주국 출신이면서, 등단이라는 혹독한 상향 평준화 과정을 통과한 분들이라 글의 수준이 세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문학을 많이, 그리고 깊게 읽어보고 한국 문학의 높은 수준에 걸맞은 문학적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하는 게 관건입니다.
최근까지 이런 번역가는 찾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한국 문학에 대해 잘 알고 많이 읽어봤지만 영작력이 영미권 출판계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못 미친다거나 영어는 원어민 수준이고 영문학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지만 한국어 텍스트를 잘 이해 못하는 번역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막연한 사대주의에 빠져 한국어 조금 할 줄 아는 백인 번역가에 의존하는 정도였습니다.
1987년에 해외여행 조건이 완화되고 90년대 조기 유학 붐이 이뤄지면서 당시 유학을 간 세대가 번역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에서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번역가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저는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일하는 아버지 덕분에 1987년 이전에도 해외 거주를 할 수 있었던 경우라 조금 앞서갔을 뿐입니다. 앞으로 저 같은 번역가가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진 제공=안톤 허

 

4. 번역가님이 작업하신 저주토끼가 해외에서 큰 반응을 얻었습니다이 작품이 해외에서 열렬한 반응을 받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그리고 번역가님께서 느끼신 현장의 반응은 어떤가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주토끼>, 혹은 정보라 작가님의 그 어느 글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다고 느낄 것입니다. 현장의 반응은 아주 당연히 좋았습니다. 런던, 뉴욕의 책방에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직접 사진으로 찍으며 굉장히 만족스러워했습니다. 영국 출판사 혼포드 스타는 책이 너무 빨리 팔려 인쇄공정을 한국에서 영국으로 옮겨야 할 정도였습니다. 금속활자 종주국의 <저주토끼> 영문판이 아주 조금 더 마음에 들었지만 일단 영국 인쇄본이 표지에 부커상 결선작 로고를 찍어줘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5. 아직 한국 문학의 해외 마케팅이 발달하지 않아 번역 외의 일도 맡고 계시다고 알고 있는데요작품이 해외에 판매되기 전까지 번역가님께서는 어떤 일들을 하시나요?

원고를 실제로 영미권 출판사에 팔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판 이후 홍보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많은 번역가 지망생들은 자신이 번역 실력이나 학벌만 갖추고 있으면 일이 자연스레 온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망상입니다. 일은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야 합니다.

평상시에 네트워킹을 잘 해둡니다. 해외 도서전이나 번역 대회에 참가하여 많은 출판인들, 그리고 번역가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출판 시장의 동향을 숙지하고 있습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도 출판인들과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제가 번역한 책이 아니더라도 저의 책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추천하고 책에 대한 대화에 참여하여 "안톤 허"를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로 축적해 나갑니다.
당연히 텍스트를 굉장히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시장에서 검증된, 해외 출판인들이 신뢰하는 번역 기술도 가지고 있지만 이건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한 필요 조건이지, 충분 조건은 아닙니다. 저를 대체할 만한 번역가를 구한다고 해도 시장 동향에 대한 지식, 저만의 구축된 출판인과 독자 네트워크는 어떻게 대체하실 건가요? 이런 것들은 하룻밤, 한두 해 안에 생기는 것들이 아닙니다.

사진 제공=안톤 허

 

6. 문화다양성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으로 아는데요(성소수자 인권운동 등). K-문학에서 문화다양성이 충분히 다뤄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앞으로 어떤 작품들이 나왔으면 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한국 문학의 힘은 다채로움과 다원주의에 있습니다특히 우리나라 퀴어 문학의 역사는 길고 깊은데, 제가 박상영 작가님의 <대도시의 사랑법>을 번역하기 전에는 영미권에 거의 전무할 정도로 한국 퀴어 문학이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해외에서는 한국에 성소수자가 없다고 말하고 다니는 교포들도 있습니다. 이 책은 거기에 대한 분노에 휩싸여 번역하고 영미권 출판계에 팔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책도 제가 영미권 출판사에 직접 팔았습니다. 에이전트나 한국의 출판사가 팔지 않았습니다.)
 
소수자의 서사는 소수자만이 아니라 다수를 포함합니다거기서 소수자의 서사의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여성 문학, 퀴어 문학, 장르 문학, 그리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은 문학을 번역할 계획입니다.   

 

7. 번역가님이 작업할 서적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잘 쓰인 책이어야 합니다. 장르가 누구든, 등단작가이든 아니든, 언어가 훌륭한 책이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신경숙 작가님처럼 쓸 수는 없지만, 한국어라는 언어를 조금이라도 더 풍요롭게 하는 작품이어야지 영어로도 아름다운 작품으로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 제공=안톤 허

 

8. K-문학은 지금 세계에서 어느 위치에 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K-문학은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 작품은 영미권에 많이 출판되어봐야 일 년에 열 권 내외로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걸 보고 "주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한국 문학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9. 문학번역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 마디 해주신다면?

아마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직업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냥 집에 앉아 번역만 하는 직업이 아닙니다.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성공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그 대가도 예상보다 허무할 것입니다. 문학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른 일을 찾아보시길 권유합니다.

 

10. 번역가님이 기대하는 K-문학의 미래앞으로의 목표는?

제발 더 많은 책들이 해외에 출판되고, 번역가들에게 더 많은 지원이 생기길 빌 뿐입니다. 금전적인 지원이 없으면 이 모든 노력은 무의미, 헛수고입니다.

사진 제공=안톤 허

 

11. 끝으로번역가님이 생각하는 문화다양성은?

나에게 문화다양성이란 서점에 갔을 때 딱 나를 위한 책을 발견하는 것 (번역가 안톤 허)

 

 


안톤 허
영어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번역가는 많지만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번역가는 처음 들어보시는 분이 많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한국 문학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일에 종사하는, 몇 안 되는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