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K-컬처와 전통예술’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나는 평론가다. 그러함에도 난 평론가를 믿지 않는다. 때론 나도 포함한다. 왜 평론가를 믿지 않을까? 시류에 ‘이끌려 가는’ 평론가가 참 많다. 문화를 ‘이끌어 가는’ 평론가는 꽤 적다. K-컬처와 관련해선 더 그렇다. 걸그룹 팬클럽회장 같은 글을 쓰는 평론가도 있고, 영화사 홍보담당의 보도자료 같은 글을 쓰는 평론가도 있다. 전통예술도 마찬가지다. 평론가는 자신의 안목(眼目)이 생명일진대, 세상의 이목(耳目)에 편승한 글을 쓸 순 없는 거다.
지금 대한민국에선 ‘문화다양성’이 화두다. 전통예술과 연관해서 만들어진 콘텐츠 중에서, 과연 문화다양성의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은 얼마나 될까?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은 ‘찰나적 화제성’에 너무 연연한다. 길게 내다보지 못한다. 방송도 그렇고, 공연도 그렇다. 해외의 평가에 민감할뿐더러, 부풀리기도 한다.
외국의 유명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그들의 음악이 전 세계로 유통되는 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전통예술의 콘텐츠 중에는 다양성이라는 범주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콘텐츠일 순 있어도, 그것이 예술성이 결핍되거나 완성도가 높지 않은 콘텐츠인 것이 적잖다. 판소리의 한 부분을 가져와서 무한 반복하는 게, 과연 판소리일까? 과연 예술적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라틴풍 댄스곡 마카레나(1996년)가 3년 정도 유행했듯이, 자극적 콘텐츠의 유통기간은 확실하다.
전통예술 중에서 앞으로 K-컬처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할 건 무얼까? 하나는 탈춤, 또 하나는 창극이다. 평론가로서 살아왔던 세월을 전제로 한 확고한 신념이다. K-컬처가 대중문화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더욱더 그렇다. 늘 두 가지 질문을 해왔다. 전 세계의 다양한 예술 장르와 변별되는 한국만의 매우 독특한 건 무엇일까? 단지 한 민족의 전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과 공감할 수 있는 ‘동시대성’으로 소통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래서 얻은 결론이다.
첫째, 탈춤을 포함한 연희공연이다. 한국의 탈춤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반도에는 다양한 형태의 탈춤이 존재한다. 그러하기에 탈춤은 K-컬처의 하나로 부각이 될까? 아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각각의 탈춤의 보존회 중심으로 전승되는 건, 탈춤의 원형보존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탈춤이 새로운 공연물로서 동시대성에 방해가 될 수 있다.
한국의 탈춤은 이제 ‘계승’과 ‘창작’으로 확연하게 구분할 시점에 와 있다. 전통탈춤이 갖는 미학과 예술성을 전제로 해서, 거기에 새로운 가치와 시대성을 집어넣을 필요가 있다. ‘탈’과 ‘춤’을 분리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자세도 필요하다. 한국의 전통적인 탈을 살리는 작품과 탈춤 특유의 역동적인 동작을 살리는 작품이 별도로 존재할 수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탈춤 (좌)봉산탈춤, (우)하회별신굿탈놀이 (제공=문화재청)
전자에선 한국의 탈을 사용해도 움직임이나 동작에선 전혀 새로운 것을 집어넣을 수 있다. 후자에선 탈춤의 신명 난 움직임을 가져와서 탈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집어넣을 수 있다. 대한민국 연희계에는 탈춤을 잘 추는 젊은이들이 꽤 있는데, 그들의 역동적인 사위가 이제 K-댄스의 ‘칼군무’와는 다른 매력으로 세계사람들의 심장을 건드리고, 맥박을 힘차게 뛰게 할 수 있다.
둘째는, 판소리가 바탕이 된 창극이다. 대한민국 국립창극단을 주목한다. 앞으로 K-컬처를 품격있게 알리는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국립창극단은 기획력이 좋고,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간 국내와 해외의 연출가가 참여해서 다양한 형태의 창극을 만들어냈다. 트로이의 여인들(옹켕센 연출), 패왕별희(우싱궈 연출)의 해외연출가의 작품도 좋지만, 창극 ‘정년이’(남인우 연출)와 창극 ‘리어’(정영두 연출)의 가능성도 크다. 모두 다듬고 또 다듬는다면, 세계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K-컬처의 위상을 높임과 동시에 외연을 더욱 넓힐 거다.
(좌) 창극 <정년이>, (우) 창극<리어> (제공=국립극장)
대한민국의 창극을 기대하는 이유는, 창극계에는 실력이 출중한 젊은이들이 많기에 그렇다. 김준수, 유태평양, 이광복, 김수인, 민은경, 이소연, 조유아 등은 국립창극단의 스타로서, 저마다의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창작판소리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자람, 박인혜, 김율희도 소리꾼이자 작창(作唱) 및 연출로서의 가능성이 크다.
나는 지금의 k-컬처를 다소 우려한다. 당대적인 인기를 얻을 소지는 많으나, 지속적인 장르로서 정착할 수 있는 동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지금의 시기는 K-컬처에 대해서 다시금 점검해보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가벼운 것뿐 아니라 무게감이 있어야 하고, 찰나적 관심을 떠나서 지속적 정서로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내세우는 K-컬처 중에서 세계 유명극장에서 대우받으며 공연할 작품은 과연 얼마쯤일까? 전통예술과 연관해선, 그동안 지나치게 가볍고 찰나적인 것에만 주목했다. 의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부터 결별하자. 한국의 전통을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인식시켜야 한다. 문화다양성을 전제로 해서 K-컬처가 위대한 예술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윤중강
국악 평론가, 기획자, 연출가
제1회 객석예술평론상(1985년)을 받으며 음악평론가로 데뷔했고, KBS 국악대상에서 출판미디어상 및 대상(2004년)을 받았다. 저서로 '국악이 내게로 왔다' '국악이 바뀌고 있다' '국악을 방송에 담다' 등 다수의 평론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