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양성 교과 실행연구] 다양성이 빚는 조화, 존중이 여는 미래(청담중학교 이보영 교사) 첨부이미지 : 문화다양성 교과 실행연구 소개_이보영 교사.png

[문화다양성 교과 실행연구]

다양성이 빚는 조화, 존중이 여는 미래—청담중학교 이보영 교사

 

🌱 교실에서 피어나는 다양성의 순간들

학생들은 교실에서 어떤 방식으로 문화다양성을 배울 수 있을까요?

 

교실은 서로의 다름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작은 세상입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교육 현장에서 문화다양성의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문화다양성의 이해」 교과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선생님들은 각 교실의 특성에 맞춰 수업을 설계하고 실제 수업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초·중·고 선생님 세 분이 전하는 수업 설계 의도와 운영 과정, 그리고 교실에서 발견한 작은 변화의 순간들을 전합니다.

다양한 삶의 모습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교사의 꿈

어렸을 때부터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즐겨 보며 세계 곳곳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접하면서, 저는 늘 “세계는 이렇게 넓은데 왜 나는 내 주변만 알고 살아갈까?” 하는 아쉬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먼 곳의 이야기와 낯선 삶의 모습은 저에게 끝없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고, 이러한 관심은 결국 지리학 전공으로 이어져 지금은 중학교 사회 교사로서 학생들과 함께 세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수업을 하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호기심 많고 밝은 학생들이 정작 세계 여러 지역의 삶의 모습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 여기거나, 때로는 가벼운 농담거리로 소비하는 모습을 보며, 어릴 적 저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던 ‘다른 삶의 방식’이 학교 현장에서 웃음거리로 여겨지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식이 아닌 ‘가치’를 전하는 수업을 고민하며

그래서 사회 교사로서 먼저 내가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더욱 깊이 이해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공부를 이어가며 깨달은 것은, 내가 오랫동안 ‘다양한 삶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긴 했지만, 그 뒤에 담긴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충분히 성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문화는 단순한 양식이나 풍습이 아니라,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며 축적해 온 지혜의 산물입니다. 각 지역의 고유한 행태는 그 자체로 인간의 선택과 노력, 적응력이 담긴 소중한 기록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미디어의 영향으로 세계 곳곳의 문화가 획일화되거나, 혐오와 비하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쉽게 목격합니다. 이런 시대일수록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힘을 기를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자 인권의 출발점이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큰 뜻을 온전히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 수업으로 구현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의 과정에서, 교사로서 세계의 다양한 삶과 문화를 ‘지식’이 아닌 ‘가치’로 전달하는 의미 있는 수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방향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문화는 오늘의 나,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나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

과거부터 인류가 쌓아 온 가치를 잊지 않고 지켜 나가려는 국제적 노력의 참된 목적을 이해하는 순간, 저는 학생들에게 단순히 “세계에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데서 그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문화는 과거의 전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며 변화하고 확장되는 인간의 삶 자체라는 점을 전달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수업의 첫 단계는 ‘문화’의 기본 개념에서 출발했습니다. 문화가 특정 집단에서 공유되는 생활양식이라는 넓은 의미를 소개한 뒤, 학생 스스로 자신의 삶 속에 이미 수많은 문화가 스며 있음을 발견하도록 개인 문화 마인드맵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선생님, 이것도 문화예요?”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곧 “아, 문화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아침마다 입는 교복도 문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으며 학생들은 즐겁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활 문화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나’로부터 출발해 시야를 넓히는 과정이었습니다.

문화다양성 수업 사진

 

다음 차시에서는 세계 여러 지역의 문화를 살펴보며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를 주제로 토론했습니다. 문화가 존중되어야 하는지, 시대 변화에 따라 변해야 하는지 등 논쟁적 주제를 다루며 학생들은 스스로 논리를 구성해 보고 글로 정리하며 생각을 확장했습니다.

문화 조사 활동에서는 음식·주거·의복·음악·종교·축제 등 영역을 나누어 문화의 특징과 그 배경을 탐구하게 했습니다. 이어 인공지능을 활용해 6컷 만화를 제작하는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자신이 지향하는 문화 태도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후에는 문화가 어떤 배경에서 형성되었고 현재 삶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그리고 미래에 그 가치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지를 위계적 6개 질문을 바탕으로 심층 분석했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문화가 어떻게 변화하고,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 긍정적으로 상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은 자신이 탐구한 문화의 미래 가치를 허니컴보드에 정리하여 시각화하고, 문화다양성 존중을 위한 실천 계획과 선언문을 작성해 낭독하는 활동으로 수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들이 열린 마음으로 참여하고 문화의 가치에 공감하는 모습이 뚜렷해졌습니다.

학생 활동 결과물

 

‘이건 대체 무슨 소리?’

수업 중반부에 세계 문화를 조사하는 단계가 시작되자 학생들은 주로 음식을 택하려 했고, ‘음악’은 가장 기피하는 영역이었습니다. 아마도 음악이라는 주제가 추상적으로 느껴지고, 이미 자신들이 즐기는 K-pop이 너무 익숙해서 다른 지역의 음악을 조사하는 데 부담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한 학생이 몽골의 전통 가창 방식인 ‘후메이(Throat Singing)’를 깊이 조사하기 시작했고, 잠시 뒤 손을 들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어폰이 없어서 그런데 설명만으로는 상상이 안 돼요. 잠깐 소리를 켜도 될까요?”

음악이 재생되자, 학생들은 생소한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이어지는 웅장함과 자연을 닮은 울림이 그들의 표정을 서서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학생들이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잠시 조사를 멈추고 함께 이 음악이 주는 느낌을 나누어 보기로 했습니다.

“자연 속에 있는 느낌이에요”

“슬픈데… 또 좋은 느낌도 나요”

“신비로워서 빠져들어요”

라며 자신이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그 순간, 세계의 음악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경험’으로 다가와 마음을 흔드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이번 수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해야 해서 하는 조사’가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다른 문화에 마음을 열고 관심을 보인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경험 이후 학생들은 교사의 지시 없이도 서로 조사한 내용을 보여 주고, 질문을 던지고, 공유하며 점차 마음을 열어갔습니다.

저는 문화 교육의 출발점이 바로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궁금해야 들여다보게 되고, 들여다보면 가치가 보입니다. 관심이 생기면 이해가 열리고, 이해를 넘어 존중으로 나아갑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를 주는 것 자체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단순 호기심으로 끝나지 않도록 후속 활동들을 유기적으로 이어 주고, 마음속에 남아 지속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학생들이 세계의 모든 문화를 백과사전처럼 많이 아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어? 저런 모습도 있네?”, “왜 저런 생활 방식이 나타난 걸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답을 찾아보려는 태도, 바로 그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수업 속에서 그러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면, 그 수업은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다양성 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

문화다양성 교육의 핵심은 단순히 세계 여러 지역의 문화를 소개하고 정보적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은 현재의 우리, 그리고 앞으로의 우리를 위한 가치 있는 시각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문화는 과거의 유산이자 전통이지만,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고, 미래 사회를 살아갈 힘과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학생들이 이를 몸소 느낄 때, 비로소 배움은 지속 가능한 형태로 자리 잡습니다.

오늘날 미디어 환경은 특정 문화를 과도하게 소비하거나 왜곡된 이미지로 만들어 편견을 강화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학생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낯선 삶의 방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를 기르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문화는 ‘이상한 것’이 아니라 환경 속에서 인간이 선택해 온 최적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존중과 공감으로 나아갑니다.

문화다양성 교육은 학생들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자신의 생활 문화와 타인의 문화를 연결해 보는 과정에서 세계를 ‘거리감 있는 공간’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공동의 삶의 장’으로 바라보게 하는 교육적 효과가 큽니다.

또 편견과 혐오를 예방하는 교육 효과를 가질 뿐만 아니라, 비판적 사고와 공감 능력, 다문화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길러줍니다. 낯선 문화를 이해하는 순간 태도는 변화하고, 인식의 변화를 경험한 학생은 타자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화다양성 교육은 학교 안에서 더 깊고 넓게 확산되어야 합니다. 토론·탐구·창작 기반의 학생 주도적 경험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교과 간 연계와 지역·세계 공동체와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문화다양성은 특정 교과에 한정된 주제가 아니라 삶 전반에 스며야 하는 가치입니다. 사회과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교과 속 활동에서 이어질 때 ‘문화다양성’이라는 개념을 지식이 아닌 일상적 태도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문화다양성 교육이 확산된다면, 학생들은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마음을 열며, 인간의 삶을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사들이 함께 수업을 설계하고 나누는 교원학습공동체의 활성화가 필요하며, 교사들이 누구나 쉽게 문화다양성 수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우수 사례집이 체계적으로 공유되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협력 구조가 마련된다면 문화다양성 교육은 단발성 시도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교육 모델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이보영

서울에서 지리 교사로 재직하며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바탕으로 수업을 실천하고 있다.

학생들이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품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중요한 교육 가치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