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휴먼은 메인스트림에 오를 수 있을까? (배윤경 기자) 첨부이미지 : 썸네일1-2.png

*본 게시물은 메타버스를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칼럼입니다.

 

인간의 불확실성을 뺀 가상 인간

어린아이를 기른다는 의미의 육아는 인내와 사건사고의 연속이다. 하루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달래야 하고 사회화를 도와야 한다. 아기는 환절기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또래 친구와 다퉈 울수도 있다. 출산이 끝이 아니라 양육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건사고와 변수가 발생해 매 순간 지치지 않는 관심과 손길이 육아의 필수다.
한 명의 사회화된 인간이 완성되기까지 고통과 고민이 이어지는 반면, 버추얼 휴먼(가상 인간)에겐 이러한 과정이 없다. 시간과 에너지가 절약될 뿐 아니라 한 번 만들면 변주가 쉽고 무엇보다 인간이 가진 불완전성과 불확실성이 제거돼 있다. 가상 인간은 철저히 기획 목적에 따라 만들어져 사고와 실수 없이 작동한다. 마케팅적 가치가 높은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인간과 유사한 기능을 하면서도 위험성이 적고 예측 가능하며 원하는 대로 적재적소에 쓰인다.

 

문화 현상으로서의 가상 인간

버추얼 휴먼, 디지털 휴먼, 사이버 휴먼, 메타 휴먼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가상 인간은 모션캡처, 인공지능, 머신러닝, 딥러닝 같은 고도화된 최신 기술의 집약체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의 기술적 마케팅 산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상 인간이란 기술 발전에 기반한 새로운 문화 현상에 가깝다. 특히 서브컬처(하위 문화)에서 두드러진다.

ⓒ구불 페이스북

버추얼 캐릭터인 유튜버 구불을 예로 들어 보자. 구불은 영화를 코믹하게 소개하는 영화 리뷰 전문 유튜버로, 지난 2017년 유튜브를 시작한 뒤 '병맛 리뷰'로 확 뜨면서 현재 구독자 90만명이 넘는 파워 유튜버가 됐다. 그의 유튜브 영상에는 항상 시바견
(시바 이누) 이미지의 버추얼 캐릭터가 등장한다. 귀여운 외모로 영화 속 상황마다 탁월한 입담과 개그 감각을
 드러내면서 구불의 차별화 포인트로 자리잡았다. '병맛'이라는 다소 비주류적 문화에 첨단기술이 더해지면서 성공 사례가 생겨난 셈이다.


서브컬처에서 빛나는 가상 인간

갓 유튜브를 시작한 신생 유튜버가 영상에 버추얼 캐릭터를 사용하게 된 것은 페이스커넥트(안면인식)기능 등 기술이 고도화 되고 관련 기기와 프로그램 사용이 쉬워지면서 모션캡처가 대중화 됐기 때문이다. 비용 장벽 역시 이전보다 크게 낮아졌다. 인터넷상에 글을 남기고 출판하는 게 이전보다 쉬워지면서 블로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영상 제작과 유통이 간편해지면서 유튜버란 새로운 직업이 생겨난 것과 같은 이치다.

ⓒ우왁굳

가상 인간의 성공 사례는 특히 서브컬처에서 많다. 접근성이 높아진 덕분이다. '이세돌' 역시 유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세돌은 '이세계아이돌'의 줄임말로, 트위치의 유명 스트리머 '우왁굳'이 만든 메타버스(가상세계) 속 가상의 6인조 아이돌이다. 이 버추얼 걸그룹은 지난해 12월 디지털 싱글 앨범을 발매하면서 정식 데뷔했다. 트위치 생방송과 유튜브 활동은 물론 음반 발매와 쇼케이스, 팬미팅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각종 음원 차트에 올랐을 정도다.

 

ⓒ라이엇게임즈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에서 지난 2018년 데뷔한 가상의 K팝 걸그룹인 K/DA 역시 동일한 사례다. 한국에서 열린 LoL
2018 월드 챔피언십을 기념해 LoL 제작사인 라이엇이 실제 가수들을 섭외, 버추얼 캐릭터를 만들었다. 대규모
 자본이 들어갔지만 활동 범위는 사실상 비주류문화에 속했는데 높은 성공을 거뒀다.

 

가상 인간의 성공은 서브컬처에만 국한될까

대중에게 가상 인간은 어느 날 갑자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와 기사 등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질적인 존재일 수 있다. 큰 눈과 오똑한 코, 날렵한 턱선, 비현실적인 비율
과 모공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 등을 내세워 인스타그램 등에서 활동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이 단기간에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광고 시장까지 빠르게 섭렵했다.
덕분에 주류라 할 수 있는 메인스트림에서도 이 같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국내 정상의 엔터테인먼트사인 SM이 내놓은 에스파가 대표적이다. 에스파는 가상 인간 4명을 포함해 총 8명이 활동한다. 네이버, LG전자, 스마일게이트 등 대기업들이 앞다퉈 가상 인간을 내놓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가상 인간이 하위문화에서 주류로 활동 분야를 확대해 나가면서 시장의 기대 심리는 커지는 반면 소비자 반발도 상당하다. 가상 인간 관련 기사 댓글 반응에는 가상 인간에 대한 거부감이나 회의론이 주를 이룬다. 이를 보면 서브컬처에서의 성공과 달리 주류문화에서 가상 인간이 자리 잡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세계관을 이해하기 어렵거나 아직 인간으로 인식하기엔 가상 인간의 말과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하위문화에서는 용인돼 왔지만 주류에서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자본으로 무장한 기업과 시장의 더 많은 관심과 지치지 않는 도전이 필요해 보인다. 인공지능 기반의 음성·
영상 합성 기술이 초반과 달리 현재 시장에 확고히 자리잡은 것 역시 이 같은 노력이 있어온 덕분이었다. 그 
날까지 서브컬처에서의 기반 닦기 역시 계속돼야 할테다.

 

배윤경
매경닷컴 기자.
경제 이슈와 정보통신기술
(ICT) 소식을 전하는 10년차 기자. 라디오와 증권방송, 블록체인 미디어 등에서 경제 패널과 강사,
IT 전문 필진으로 활동했다. 한국교통방송 TBN제주 '배윤경의 경제이야기', 매일경제TV
'IT수다', 디스트리트 칼럼 '100만원으로 전세자금 마련하기', 국방일보 '위클리 경제 이슈', 서울관광재단 '콘텐
츠 글쓰기에 대하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