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만난 이웃에서 ‘쫌 앞서가는 가족’으로 (김수동 이사장) 첨부이미지 : 썸네일11-10.png

*본 게시물은 주거 문화의 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칼럼입니다.

 

이렇게 혼자 오래 살 줄 몰랐어.”

나이 80 너머의 삶은 전혀 상상도 준비도 하지 못했다며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노년의 삶에 대한 회한이 진하게 서려 있는 목소리. 오래전 내 어머니 친구의 이야기다. 이 말은 내 삶을 전적으로 흔들어 놓았다.
 
누구나 언젠가는 홀로 남는 시대, 우리는 어디서 누구와 살 것인가? 고령화사회와 고립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관계와 공간을 찾아 나섰다. 나이가 들어서도 익숙한 동네에서 이웃과 어울려 살 수 있는 집. 이 질문에 내가 주목한 것이 바로 공동체 주거다. 공동체 주거는 공동체 안에서 주민들이 공동체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서로 친밀하고 안전한 주거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방식 실천을 통해 우리는 고독감 해소는 물론 가사노동의 부담도 덜고 주거비도 절약할 수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공동체 주거에 관심을 두고 공부해보니 알면 알수록 참 괜찮은 주거유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 전세 난민으로 아파트에 살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누구와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은평지역 공동체 주택 추진 희망자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어쩌다 만난 나의 이웃들과 집짓기를 시작하였다.
 
나는 외롭지 않은 노년을 위한 집을 찾았고, 누군가는 전세 난민 탈출을 위한 대안으로 공동체 주택을 선택했다. 홀로 전원주택을 지으려다 실패 후 자연친화적 준도심 생활권을 선택한 사람. 은퇴 후 자녀들 떠난 빈둥지를 정리하고 이웃이 있는 새 삶터를 찾은 60대 부부. ‘나는 아파트가 싫어요!’를 외치며 이웃을 찾아 나선 사람. 다세대주택 및 원룸에서 늘 불안했다며 안전한 집을 찾아 나선 비혼 1인 가구 및 여성 청년 가구, 우리가 공동체 주택에 참여한 이유와 기대는 다양하다.

 

ⓒ클립아트코리아

집이 사적소유의 대상일 때 우리는 욕망과 함께 모든 것을 내 집 안에 담아야 했고 끊임없이 집을 늘리고 채우는 삶을 살았다. 반면에 공동체 주택은 사적공간에 더하여 모두를 위한 공유공간을 품고 있다. 이제 집에 대한 덧없는 욕망과 집착은 내려놓아도 좋다. 이렇게 함께 집을 지으며 우리는 더불어 사는 집의 든든한 이웃이 되었다.
 
이렇게 서로의 빈 곳을 채우는 이웃이 되어 살아온 지 어느덧 7년. 공동체 주택 살아보니 참 좋다.
 
무엇보다 함께라서 좋다. 외롭지 않고 안전하다. 혼자서는 어려웠던 많은 일들이 가능해진다. 혼자 하면 힘든 일도 함께하면 놀이가 된다. 급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웃이 있어 좋다. 서로의 적은 노력과 시간 마음이 모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래서 두려움이 없어지고 용감해진다. 왠지 똑똑해진 것 같다. 뭔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이웃들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니 관계가 확장되고 삶이 풍부해진다. 세대가 어울려 살아 좋다. 느슨하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일상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우리에게 세대 갈등은 없다.
 
외로움 권하는 사회, 빚 권하는 사회에 맞서 각자도생이 아닌 함께공생의 삶을 선택한 우리.
어쩌다 만난 이웃에서 이제 ‘쫌 앞서가는 가족’이 되었다.

 

ⓒ클립아트코리아

이 험하고 각박한 세상에 누구를 믿냐며 이웃과 담을 쌓고 타인을 경계하며 사는 것이 상식이 되어 버린 시대에 더불어 사는 사람들. 돈이 최고이고 돈만 있으면 행복한 노후가 보장될 거라고 끊임없이 떠드는 세상 속에서 돈으로도 살 수 없고 돈보다 소중한 것이 이웃이라고 믿는 사람들. 한없이 소유하고 원 없이 소비해야 행복이라고 믿는 사람들 속에서 공유하고 비우고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우리는 쫌 앞서가는 가족이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부동산시장은 어느새 차갑게 얼어 버렸다. 주택을 상품화하고 부동산 경기부양에만 매달렸던 우리의 주택정책도 이제 변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도시를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의 격리된 공간’으로 채울 것인가? 우리 사는 도시가 삭막한 이유는 집이 부족하고 건물이 낡아서가 아니라 이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도시를 따뜻하고 살만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서로 어울려 사는 마을과 집, 공동체의 회복이다.

 

 

김수동
외로움 권하는 사회에 맞서 함께 사는 즐거움을 알리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즐거이 애쓰고 있습니다. 현재 3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구성의 10세대가 모인 공동체 주택 ‘여백’에 참여하여 든든한 이웃들과 함께 사회적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집을 이웃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공동체 주택을 제시하고, 다양한 국내외 사례제시와 분석 그리고 자신의 참여 경험을 바탕으로 이 시대의 바람직한 집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낸 <쫌 앞서가는 가족(시니어 공동체 주거를 생각한다)>이 있습니다.
 지금은 세대 간 연대를 통해 청년의 집을 만들자는 취지의 시민출자 청년공유주택 ‘터무늬있는집’을 많은 시민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