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식문화의 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칼럼입니다.
여자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떡볶이가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아무리 어른이 되어도 삶에 지치는 날이면 어김없이 옛날 학교 앞에서 팔던 매콤한 떡볶이가 떠오르니깐 말이다. 현실이 각박할 땐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위로받고 싶어지는 법인가보다. 이것저것 먹어도 허한 기분이 들 때면 어머니가 차려준 따듯한 밥상이 절실해진다. 보글보글하게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 얼큰한 김치찌개 한 숟가락을 떠먹으면 마치 어머니가 따듯한 손길로 고생했다며 위로해주는 느낌이 든다. 이뿐인가. 한국에서 치열한 직장생활을 해봤다면 지글지글 구운 삼겹살과 소주 한 잔에 그 날의 스트레스까지 담아 꿀꺽 삼켜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삶이 힘들고 고단할 때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위로’를 먹는 셈이다.
음식 그 자체보다 중요한 건 ‘기억’
음식은 행복과 위로를 섭취하는 주요한 통로 중 하나이다. 최근 식문화 분야에서 자주 거론되는 개념이 있다. 바로 ‘컴포트 푸드(Comfort food)’이다. 컴포트 푸드는 간단히 말하면 말 그대로 먹을 때 행복을 느끼고 마음이 편해지는 음식을 뜻한다. 이는 대부분 어린 시절의 기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어른이 된 이후에도 특정 음식을 먹으면 추억 속의 장면을 떠올리며 안정을 느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컴포트 푸드는 ‘메모리 음식’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컴포트 푸드에서 중요한 요소는 식재료나 가미된 조미료가 아니라 음식 안에 깃든 “추억과 이야기”이다.
사회 문화와 함께 진화하는 컴포트 푸드
이전에는 몇 가지 음식에만 국한되던 컴포트 푸드가 여러 문화적 요소에 의해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되고 있다.
첫 번째 요소는 ‘사람들이 먹고 자란 브랜드’이다. 컴포트 푸드는 사실 우수한 맛이나 영양성 그 자체가 기준이 되기보다는 그 음식에 담긴 이야기, 감성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에 현재 주목받는 특정 트렌드 보다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브랜드 음식이 컴포트 푸드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오래된 브랜드를 다시 활성화시켜 유년시절의 향수를 느끼고자 하는 ‘레트로 열풍’, 마음속의 고향을 떠올리는 ‘노스탤지 푸드’ 등이 각광받는 것도 이런 원리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닐까.
ⓒ클립아트코리아
두 번째 요소로 ‘건강한 삶에 대한 욕구’를 들 수 있다. 무엇이든 빠른 나라인 대한민국의 가장 뚜렷한 변화는 느려진 삶의 속도일 것이다. 자신을 돌보는데 소홀하며 바쁘게만 살아가던 이전의 사회 분위기와 달리 최근 젊은 세대는 슬로우 라이프, 웰빙족, 친환경 비거니즘을 선호한다.
이전에는 건강에 유해한 음주, 자극적인 음식으로 묵은 스트레스를 해소했다면, 이제는 친환경 재료로 정성스럽게 만든 건강 요리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자 한다. 또한 고강도의 업무보다는 워라밸 라이프를 선호하며, 퇴근 후 집밥으로 집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녹인다. 이런 사회 문화적인 흐름과 함께 사람들이 추구하는 컴포트 푸드도 자연스럽게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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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MZ세대의 새로운 관점’을 살펴보자. 외식보다는 집밥의 빈도수가 많았던 이전 세대는 소위 ‘밥심’이라고 하여 든든한 집밥에서 힘을 얻곤 했다. 하지만 SNS세상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MZ세대의 주요 관심사는 ‘색다른 취향 공유’에 있다. 이국적인 음식, 누구도 겪어보지 못한 맛 등의 빠른 공유를 통해 심리적 만족감을 느낀다. 또한 매운맛 열풍, 힐링 문화 등 시시각각 변하는 외식 산업의 파도 속에서도 선두에 서야 안정감을 느낀다. 통상적으로 컴포트 푸드의 본질을 과거의 추억에서 찾는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현재와 미래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 시국을 지나며 배달음식 시대를 맞이한 요즘, MZ세대가 편안함을 느끼는 컴포트 푸드는 손가락 터치 하나면 눈앞에 대령되는 배달음식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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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에서 위로받는 대한민국
최근 들어 1인가구는 물론 혼밥족이 부쩍 늘고 있다. 싱글 라이프가 확대 되면서 자유로운 생활은 가능해졌지만 동시에 그만큼 사람들의 외로움도 짙어지고 있다. 요즘 시청자들은 혼자 먹는 밥이 쓸쓸하면 ‘먹방(먹는 방송)’을 찾는다. 모니터 속의 먹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그들과 함께 한 상에 앉아 밥을 먹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제 음식으로 위안을 받는 수단이 직접 먹는 입뿐만 아니라 눈으로 보는 콘텐츠까지 확장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1인 플랫폼의 발달과 미디어 매체의 다양화라는 기술의 발전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먹방은 결국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이자 먹는 것이 일상인 우리 삶이 반영되어 나타난 결과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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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문화에도 스며든 힐링 감성
최근 문화 산업에서 가장 화두인 키워드가 ‘힐링’이다. 매운맛 열풍이 불었던 시기에는 미디어 산업은 앞다투어 자극적인 콘텐츠를 출시했다. 외식 시장에서는 고통에 가까운 매운맛이 환영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자극적인 콘텐츠와 음식에 피로감을 느낀다.
마라탕 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그러면서 착하고 순한 맛이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일명 ‘힐링 감성’이다. 식문화에서도 화려한 외관, 강렬한 맛을 지닌 음식뿐만 아니라 소담스럽지만 정성어린 음식들도 함께 주목받기 시작했다. 요즘 소비자들은 조금 맛이 심심한 듯해도 자극적인 조미료를 줄인 집밥 같은 맛집을 선호한다. 또한 고가의 음식만 귀이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쉬이 접할 수 있는 음식에도 소중함을 부여한다. 이렇게 힐링 감성이 스며든 음식은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에게 컴포트 푸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컴포트 푸드(Comfort food)로서 ‘편안함(Comfort)’을 느끼는 영역은 개인마다 다르다. 매운맛의 자극적인 음식이든 순한 맛의 착한 음식이든, 5시간을 고아내서 완성한 음식이든 전자레인지에 3분만 데우면 되는 간편식이든 치열한 삶을 살아가느라 방전된 우리의 마음을 충전시켜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컴포트 푸드가 아니겠는가. 마음에 한줄기 치유를 주고 가는 저마다의 컴포트 푸드를 통해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힘을 얻기를 바란다.
이주현
따듯한 마음을 담은 한 그릇의 요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성신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기획팀원, 한국외교협회 영양사로 활동했다.
현재는 무드앤쿡 쿠킹클래스를 운영하며 요리 연구가로 방송, 강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식품 브랜드, 공기업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푸드 칼럼니스트로서 왕성하게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