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게임은 문화다양성을 어떻게 수용하나? (이경혁 칼럼니스트) 첨부이미지 : 1.png

 

*본 게시물은 ‘K-게임과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대규모의 인력과 자본이 들어가는, 이른바 AAA급 게임들은 투자한 자본만큼의 기대수익에 부응해야 하고, 그에 따라 가장 대중적이고 안전한 주제와 소재를 다루기 마련이다. 새로운 시리즈보다는 기존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작품의 후속작이, 간단한 게임보다는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의 게임이 좀 더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받아들여질 확률이 높기에 대부분의 대형 게임제작사들은 언제나 안전한 주제와 소재를 다루고자 한다.

이런 시장 분위기 속에서 인디게임이라는 영역은 게임의 주제와 소재가 갖는 다양성의 폭을 지탱하는 역할로도 이해된다. 대형 게임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새로운 게임 메카닉에 대한 실험이 이어지고, 대중매체에서는 쉽사리 다뤄지지 않는 주제들이 게임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21 Days)의 플레이 화면 중 한 장면

 

시리아 난민의 유럽 적응기, <21 Days>

2017년 한국에서 제작, 발매된 인디게임 <21 Days>의 중심 소재는 난민과 이주민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국지적인 분쟁을 통해 폭증하기 시작한 난민 문제는 시리아 사태를 기점으로 전세계적 관심을 촉발했는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1 Days>의 주인공인 모하메드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난민이 된 사례다. 간신히 내전의 위험을 피해 모하메드는 탈출에 성공해 유럽 어느 도시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그의 가족들은 시리아에 남아 있고 생존을 위해 돈이 필요한 상태다. 게임 <21 Days>는 난민으로 선진국에 도착한 주인공이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낯선 유럽 도시에 정착해 나가는 21일간의 이야기를 다룬 게임이다. 직업 구하기부터 언어 장벽에 이르기까지 실제 난민들이 겪는 수많은 문제들은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헤쳐 나가야 할 과제로 부여된다.

그렇다면, 문화다양성이 담긴 세계의 게임들의 사례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페이퍼즈 플리즈>의 플레이 화면 중 한 장면 ⓒ3909

 

동유럽 부패 공무원의 속사정, <페이퍼즈 플리즈>

성공한 인디게임 중에는 무려 공무원을 소재로 한 게임도 존재한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공무원이 주인공인 <페이퍼즈 플리즈>는 국경 검문소에서 여권 심사하는 과정을 게임화했는데, 실물과 사진을 대조하고 여권에 적힌 정보를 검증해 입국 도장을 찍는 자칫 단조로워 보이는 과정은 게임의 핵심 규칙으로 흥미롭게 거듭난다.

내전 등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동유럽의 가상국가를 배경으로 한 <페이퍼즈 플리즈>는 국경 공무원이 반군의 밀입국을 뇌물을 받고 용인해 주는 등의 부패 활동을 벌이면서도 당장 집에 난방이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공무원의 현실을 겹쳐 보여줌으로써 플레이어로 하여금 윤리적 고민에 놓이게 하는 탁월한 갈등을 조성하며 큰 반향을 얻은 바 있었다.

 

<프리즌 아키텍트>의 플레이 화면 중 한 장면

 

사설 교도소의 작동 메커니즘, <프리즌 아키텍트>

<심시티> 등으로 대표되는 건설경영 시뮬레이션 장르는 인디게임에 들어오면 더 놀라운 소재 다양성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미국식 사설 교도소의 운영을 다루는 <프리즌 아키텍트>가 대표적이다.

교도행정이 국가에서만 이뤄지는 한국과 달리 사설교도소가 적지 않은 미국의 상황으로부터 모티프를 얻은 <프리즌 아키텍트>는 직접 사설교도소의 소장이 되어 감옥과 식당, 교정본부를 짓고 흉악범을 교육, 지도하며 탈옥을 막는 등의 다양한 교도소 활동을 직접 운영해 보는 과정을 게임으로 구현해 기존의 건설경영 시뮬레이션과는 다른 관점에서 시설의 운영을 게임화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었다.

 

디지털게임의 미래가 담긴 인디게임의 문화적 다양성

가장 대중적인 모바일 게임을 중심으로 다소 획일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요즘의 디지털게임 분위기이지만, 이 매체가 가진 본원적 잠재력은 바로 다양성이다. 난민 문제부터 교도소 운영에 이르는, 인간의 삶 거의 모든 부분이 게임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는 소재일 수 있는 것은 큰 자본의 수익성이라는 요구에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인디게임이라는 영역의 존재로부터 가능한 일이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이러한 다양성은 단순히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시장으로부터 선택받으며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디게임은 말 그대로 가능성과 다양성의 영역으로 존중받고 있다. 디지털게임이 앞으로 무엇을 더 선보일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의 인디게임 출시 상황을 봄으로써 해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많은, 더욱 과감한, 더욱 다양한 소재와 주제들로 채워질 인디게임의 너른 벌판은 매체로서 디지털게임이 갖는 미래이기도 하다.

 

 

이경혁
2014년 매체 비평지 〈미디어스〉에 게임 비평 칼럼을 연재하면서 게임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게임 관련 비평 및 연구자로 활동하며 인터넷 게임문화 웹진 〈게임 제너레이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