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쓸모(하현 작가) 첨부이미지 : 6.png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동네는 광화문이다. 이건 제일이나 가장, 최고를 고르는 일을 어려워하는 내가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최상급 중 하나다. 광화문이 왜 그렇게 좋은지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하지만 이상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을 좋아하는 이유보다 싫어하는 이유가 훨씬 더 많이 떠오르니 말이다.
서울이 다 그렇듯 광화문에도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많다. 너무 많은 사람, 너무 많은 자동차, 너무 많은 소음, 너무 많은 행사, 너무 많은 갈등……. 피곤하고 시끄럽고 성가신 것들로 북적이는 광화문 일대는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숨이 턱턱 막히는 서울 그 자체다.
그럼에도 광화문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거리 곳곳에 추억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아빠와 소풍 가듯 집을 나서 한나절 즐겁게 놀다 오곤 했던 교보문고. 겨울이면 군밤과 맥반석 오징어를 팔던 세종문화회관 앞 노점상.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했던 씨네큐브와 스폰지하우스.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의 장면들을 떠올리며 걷다 보면 도시의 소음도 제법 낭만적인 배경음악처럼 느껴진다.

 

 

ⓒ클립아트코리아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내게는 세종대왕 동상보다 확실하게 광화문을 상징하는 것. ‘아, 광화문에 도착했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지표. 그건 바로 세종대로 사거리에 위치한 일민미술관이다.
스물두 살 가을,

 

ⓒ일민미술관

 

나는 매일 아침 광화문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취업 준비를 위해 종로에 있는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지금 생각하면 가까운 곳을 두고 굳이 집에서 먼 학원을 선택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만 그때는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좋은 것들은 모두 서울에 모여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시절. 그 믿음이 왕복 세 시간의 등하원을 가능하게 했다.
이 넓은 세상 어딘가에 내 자리 하나쯤은 있겠지. 아침이면 막연한 희망을 품고 집을 나섰지만 저녁이 되면 그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고작 서른 명 남짓한 동기들 중에도 날고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나는 아마 망할 거야. 평생을 이렇게 살다가 집도 절도 없는 채로 서른이 되고 말겠지. 돌아오는 발걸음은 늘 무거웠다.

포트폴리오 준비로 밤을 꼬박 새운 어느 날.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한참을 졸다 눈을 떠 보니 이미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 있었다. 허둥지둥 내려 학원을 향해 달려가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일민미술관 앞.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그곳에 충동적으로 들어갔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세 달, 첫 땡땡이였다.
그날 본 전시가 무엇이었는지는 놀라울 만큼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하는 건 이런 것들이다. 2층 전시장 한쪽에서 하얀 천이 등장하는 어느 영상 작품을 보았던 것.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 앞에 오래 서 있었던 것. 미술관 화장실은 뭔가 다를까 궁금해 괜히 손을 씻으러 들어갔던 것. 막상 들어가 보니 너무 평범해서 몰래 웃고 말았던 것. 1층 카페에 파는 아이스크림 와플을 먹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포기했던 것. 내 안의 무언가가 비로소 채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내내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었던 나는 그날 아주 오랜만에 여유로웠다. 어떻게든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아등바등 하루를 꽉 채워 살았지만 누군가 한 번쯤 말해줬으면 했다. 무용한 것들의 쓸모와 그 아름다움에 대해. 바로 옆 건물 우체국이 사라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지겠지만 미술관이 사라진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겠지. 그래서 좋았다. 무용한 채로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술관과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일이.

그때로부터 11년이 지나 나는 서른셋이 되었다. 학원에 다니며 배운 기술은 아니지만 다른 일을 하며 돈도 벌고 글도 쓴다. 그리고 가끔은 전시를 보러 가기도 한다. 여전히 미술은 잘 모르지만 이제는 그게 부끄럽지 않다. 일민미술관 1층 카페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와플도 몇 번이나 먹어 보았다.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그곳에 갈 때면 빼먹지 않고 주문하게 된다.
 그때만 해도 미술관에 가는 일은 소수의 사람들만 즐기는 어려운 취미였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친구들의 sns에 심심치 않게 각종 전시 후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요즘은 이 전시가 인기라고, 티켓팅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주말 관람은 꿈도 못 꾼다고. 그런 소식을 들을 때면 새삼스럽게 놀라곤 한다.

이런 변화의 배경은 아마도 문화다양성이지않을까. 오늘날의 미술관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2023년 환기미술관에서는 시민참여형 배리어프리 전시 <뮤지엄 가이드>가 진행됐다. “김환기 예술세계에 입장한 모든 이들과 동행하여 소외되거나 길을 잃은 이가 없도록 할 것”이라는 의도로 기획된 이 전시는 후각 가이드와 청각 가이드를 제공해 시각적 요소 이외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처음에는 시각장애인의 문화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층 풍성해진 즐길거리를 통해 깨달았다. 다양성을 위한 노력은 결국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리어프리를 통해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려는 시도는 결코 어느 한 집단에게만 득이 되는 일이 아니다. 미술관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될 때, 우리는 그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가만히 서서 보기만 했던 작품을 만지고, 듣고, 냄새 맡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듯이.

  지루한 평일이 지나고 선물처럼 찾아온 주말, 들뜬 얼굴로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그 시절 내게 간절했던 여유가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무언가도거기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당신이 누구인지에 따라 그것이 무엇인지도 달라질 것이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더 많은 당신과 더 많은 무엇을 품은 미술관이 가장 오래 살아남으리라는 것. 내가 사랑하는 일민미술관처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끝까지 잊히지 않으리라는 것.

 

하현

김포와 망원과 일산을 오가며 책을 쓰고, 책을 팔고, 책을 읽는다. 《좋았던 것들이 하나씩 시시해져도》 《우리 세계의 모든 말》 《달의 조각》 등을 썼다. 장래희망은 부유하고 명랑한 독거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