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을 틀며 (양다솔 작가) 첨부이미지 : 그림23.png

*본 게시물은 'K-컬처와 다양성’을 주제로 외부 필자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에세이입니다.

 

  운전대를 잡았을 때, 트랙 위를 내달릴 때, 먼지 가득 쌓인 방을 청소할 때 가장 먼저 K-POP을 튼다. 그것은 마음보다도 나를 먼저 일으킨다. 익숙한 비트에 어깨를 들썩이며 가사를 따라 부르면 어느새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간은 힘찬 아이처럼 뛰어간다. 신나는 비트가 등을 밀어주는 것 같다. 이는 꽤나 낯 설은 일이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내가 그것을 열심히 피해 다녔기 때문이다. 맥락이나 논리 없는 스토리라인, 주구장창 사랑만 찾는 가사, 중독성만 추구하는 반복적인 멜로디, 된다 싶은 노래만 적당히 변주하는 몰개성한 음색 등에 나도 모르게 젖어 드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그렇지만 서울에 살면서 최신 가요를 피한다는 것은 태양을 피하는 일과도 비슷했다. 다니는 길목마다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통에 몇번의 외출만으로
도 나도 모르게 그것을 흥얼거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K-pop은 전례 없는 번영을 이룬다. 얼마 전 일본에 손녀를 둔 이모에게 들은 일화가 인상적이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손녀가 친구들에게 “우리 할머니는 한국인이야!”하고 자랑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나는 일본에서 한국인인 것이 자랑이 될 시대가 올 줄은 몰랐다. 물론 이것으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개선되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실로 놀라운 변화다. 이런 일화가 아니더라도, 전세계적으로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곳곳에서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매된 노래가 빌보트 차트에 진입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며, 한국어 가사를 그대로 외워 따라 부르는 외국인들을 흔히 볼 수 있고, 세계 곳곳에서 K-POP 랜덤플레이댄스가 성황리에 진행되기도 한다. 경기는 침체되고, 사회적 문제는 다각화 되며, 세계의 앞날을 생각하면 그저 암담한 와중에 케이팝의 미래만은 찬란하게 빛난다.
 

 

 

ⓒBTS공식홈페이지 ⓒ뉴진스공식홈페이지

  K-POP 하면 아이돌, 아이돌 하면 K-POP일 것이다. 특히 요즘은 케이팝이 정점에 있다는 것을 여실히 실감한다.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new and improved'되고 있다. 계속해서 새로워지고 강력해진다. 그 정도가 국가의 위상을 높여줄 정도다. 근래 인터넷에서는 무척 자랑스러운 인물을 말할 때 ‘00 보유국이다’, ‘00가 나라다’ 라는 표현을 하는데, 실로 과언이 아니다. 뉴진스를 보다 보면 국뽕이 아닌 '늊뽕'이 차오른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라고 말씀하신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우리나라가 BTS와 뉴진스의 보유국이라는 것을 알면 자랑스러워 하실까. 아이돌은 날이 갈수록 어려지고, 아름다워지고, 실력이 향상되어 출현한다. 비인간적이다 싶을 정도로 그렇게 되어왔다. 대단한 그룹이 나오고, 그 다음으로 더 대단한 그룹이 나온다. 그리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그룹이 그 다음으로 나온다. 새로운 아이돌의 등장 앞에 매번 ‘전무후무’ 라는 말을 붙여도 될 것 같다. 깍두기 취급을 받던 아이돌 특유의 음악성 또한 그 수식을 떼고 평가해도 좋을 정도로 훌륭하다. 의상부터 안무, 뮤직비디오, 브랜딩, 마케팅까지 타의 추정을 불허할 정도로 혁신적이다.

  그 중에서도 뉴진스는 단순히 어리고 예쁘고 실력이 뛰어난 그룹이 나왔다는 정도가 아니다. 그들은 다섯명의 소녀로 보이는 하나의 신드롬, 거대한 무브먼트처럼 보인다. 그들의 뒤로 수많은 아이돌의 흥망성쇠와 데이터베이스, 발전된 기술과 시류의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해낸 전략,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비춰 보이는 것 같다. 케이팝, 아이돌, 자본주의 라는 수식을 두루 아우르는 집합체인 것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약점이 없다. 그야말로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 주요 대기업의 광고를 싹쓸이하고, 생각지도 못한 콜라보를 하며 멤버들마다 명품 브랜드를 하나씩 꿰차는 와중에 음악까지 좋다. 그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을 정도다. 그와 동시에 종종 생각에 잠긴다. 평균 연령이 겨우 16세라는 이들의 30년 후, 50년 후는 어떨까? 이들보다 새롭고 강력한 아이돌은 또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아주 작은 논란으로도 순식간에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는 요즘의 연예계에서, 그들이 오래도록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미래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한쪽에 대단한 아이돌이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대단한 팬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둘은 빛과 그림자처럼 필수불가분의 관계다. 눈부신 영광 뒤에는 그만큼 진한 팬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활동을 열성적으로 지켜보고 기다리며 알리고 응원하고 칭찬하는 사람들. 몸과 마음, 시간과 돈을 흔쾌히 내어 그들을 온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커다란 산업이 될 만큼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나는 스타들의 영광만큼이나 팬들의 영광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 사실이 새삼 부끄럽기도 하다. 누군가를 위해 그토록 큰 마음을 내어준 적이 있는가 되묻게 된다. 얼마나 많은 구체적인 사랑이 모여야 문화가 될 수 있는지 까마득하다. 다만 그들 또한 시간이 갈수록 더 새로워지고 강력해졌으며, 그 덕분에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사랑하고, 그것이 다시 사랑을 노래하게 된다. 그 흐름에 나도 발끝을 담구어 보며, 다시 K-pop을 튼다.

 

 

 

 

양다솔

10년동안 쓴 글들을 모아 독립출판물을 발간하며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수필집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아무튼, 친구>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