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게시물은 ‘K-뮤지컬의 해외 진출’을 주제로 외부 전문가가 개인적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한 칼럼입니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곤경에 빠졌던 한국 뮤지컬계가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엔데믹을 기점으로 V자 반등을 보이며 급속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복 소비’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는 경탄을 자아낸다. 전체 공연시장에 대한 조사에서 80%를 넘는 매출을 뮤지컬 장르가 독차지했을 정도다. 연극, 오페라, 발레 등 여타 장르의 콘텐츠를 모두 합하면 18% 안팎에 불과하다. 당분간 대한민국 공연계에서 뮤지컬의 독주는 계속될 전망이다.
뮤지컬에 규모의 경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막을 올렸던 ‘오페라의 유령’에서부터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LG아트센터에서 7개월가량 지속된 이 공연은 140여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190억원이 넘는 매출을 달성해 당시 대한민국 뮤지컬로는 전례없는 흥행 기록을 남겼다. “무대는 배고프고, 예술은 힘들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무대용 콘텐츠도 ‘제대로’ 만들면 ‘돈 벌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셈이다. 이후 우리나라 공연계에선 우후죽순처럼 해외 유명 대작 뮤지컬들이 앞 다퉈 소개됐고, 급속한 시장 팽창도 경험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한 장면(에스엔코 제공)
시장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우리 창작 뮤지컬의 해외진출도 관심사로 부상됐다. 다양한 한류 콘텐츠들처럼, 무대용 뮤지컬도 글로벌 마켓을 향한 도전이 본격화되는 셈이다. 공연에서 해외 진출은 영상과는 사뭇 다르다. 완제품의 판권이나 방영권을 주고 파는, 그래서 창구 효과(window effect)가 부가가치와 연관이 깊은 영상 콘텐츠들과는 달리, 공연은 대본이나 악보같은 공연에 대한 기초 정보를 제공해 현지에서 막을 올리는 라이선스 뮤지컬과 배우와 연출, 스텝이 모두 함께 방문해 일정기간 막을 올리는 투어 프로덕션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 시장도 마찬가지다. 해외 뮤지컬의 국내 유입은 판권을 확보해 일정 기간 몇 회의 공연을 올릴 것인지의 계약에 따라 우리 배우들을 기용해 현지화한 한국어 캐스트 프로덕션을 꾸미는 번안 뮤지컬과 직접 배우와 스텝이 내한해 한시적으로 공연하는 오리지널 뮤지컬 시장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차이점이라면 국내 시장과 글로벌 시장이라는 ‘운동장’이 다른 점, 그리고 수입 뮤지컬과 창작 뮤지컬이라는 콘텐츠의 이질성, 그리고 그로 인해 유통의 흐름이 정반대로 진행된다는 정도다.
초기 우리나라 뮤지컬들의 해외 진출은 주로 투어 프로덕션 형태로 이뤄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명성황후’다. 뉴욕과 런던 등지에서 막을 올리며 현지보다 국내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실 수익이라는 측면에선 뚜렷한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열악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한다면 한국산 뮤지컬이 종주국이라 불리는 영미권 시장에 진출해 막을 올렸다는 성과로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경우다. 넌버벌 퍼포먼스인 ‘난타’와 ‘점프’,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등도 오프 브로드웨이나 에딘버러 프린지같은 소극장 무대에 도전하는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해외 진출이 처음 시도되던 초기에는 스타 마케팅의 적극적인 활용도 자주 등장했다. 아직 충분한 경쟁력이나 인지도를 확보하지 못한 창작 뮤지컬의 빈약한 대중성을 K팝을 향한 팬덤으로 보완해보려는 일련의 시도들이다. 그 결과, 자극적인 마케팅 기법으로 스타의 활용은 단기적인 성과를 올리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역으로 장기적인 영향력이나 창작 뮤지컬로서의 브랜드 충성도나 파워를 형성시키기에는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스타의 활용은 단기간에 관심을 불러일으켜 티켓 판매에 도움이 되는 장점이 있는 반면, 창작 뮤지컬로써 혹은 해당 콘텐츠에 대한 완성도나 안정적인 소비층의 형성을 가져오기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슬로바키아 버전의 국내 창작 뮤지컬 투란도트(제공=DIMF)
요즘 일련의 창작 뮤지컬들과 제작자들이 선보이는 신선한 행보들은 그런 의미에서 반가운 변화다. 초기의 여러 경험들을 바탕으로 보다 다변화되고 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들을 고심해 엉어진 결과기 때문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공연의 대상과 지역이다. 해외진출이 모색되던 초기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로 대표되는 영미권을 겨냥했던 것과 달리, 최근에는 이들 지역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 대만 혹은 유럽의 제 국가 등 보다 친근하거나 우호적인 문화적 배경과 거리를 지니고 있는 공연시장으로의 진출이 활발하게 모색되어지고 있다. 공연의 성격도 단기간의 투어 프로덕션에 국한되지 않고 라이선스를 판매할 때 러닝 캐런티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해 향후 공연 수익을 나누는 프로핏 쉐어(profit share) 방식을 택한다던지, 현지 배우들로 각색과 재구성의 과정을 거쳐 보다 자연스레 글로벌 관객들에게 소비되어질 수 있는 진화된 양태를 보이고 있다. 슬로바키아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투란도트’, 폴란드에서 공연된 ‘마리 퀴리’, 대만의 공공극장을 위시로 한 ‘팬레터’나 ‘어린 왕자’같은 일련의 작품들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좌) 2018년 뮤지컬 팬레터 대만공연 포스터(제공=NTT),
(우) 2022년 대만에서 공연된 뮤지컬 어린왕자(제공=HJ컬처)
한번 만들면 고치기 어려운, 그래서 한참 세월이 지나 ‘리부트’라는 이름으로나 다시 제작되어야 하는 영상물들과 달리, 현장에서 라이브로 재연되는 공연예술장르인 뮤지컬은 필연적으로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변화되고 진화한다. 같은 작품을 여러번 반복해 소비하는 회전문 관객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도 매번 생동감있게 구현되는 현장예술로서의 정체성과 특장점이 여타 콘텐츠들과는 차별화되는 매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2022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뮤지컬 <마리 퀴리> 갈라쇼
(출처=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
창작 뮤지컬의 해외진출은 완성된 논의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화두다. 문화산업에서 문화의 다양성이 과거 어느 시기보다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절호의 기회이자 행운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활성화는 우리에겐 큰 도전이며 과제다. ‘맘마미아!’나 ‘올 슉 업’처럼 왕년의 인기 대중음악으로 만드는 주크박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나 ‘라이온킹’ 같은 영화나 영상물이 원작인 무비컬. ‘지킬 앤 하이드’, ‘레미제라블’이나 ‘오페라의 유령’처럼 소설이나 문학을 원작으로 하는 ‘노블컬’ 등 뮤지컬은 기존의 원 소스를 활용해 효과적인 멀티 유즈를 구현해냄으로써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시장에 최적화된 문화산업으로서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세계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K팝, K무비, K드라마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보물상자다. 관건은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롭게 이를 뮤지컬로 환생시킬 것인가의 여부다. 좋은 창작 뮤지컬이 등장할 환경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이유다.
원종원
뮤지컬 평론가,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
한국외대 재학 시절, 영국을 여행하다가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저변을 확대하고자 국내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 관극운동을 펼쳤다. TV의 프로듀서와 일간지 기자,특파원을 거쳤으며, 현재 일간지와 경제지 등 여러 매체에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컬 마니아이자 전문 평론가로 지면과 방송 등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