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의 매력을 가르치는 외국인 교수(인류음악학자 안나 예이츠) 첨부이미지 : 그림4.png

문화다양성 인터뷰

문화다양성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화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해 매월 특정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질문하고, 그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판소리의 매력에 빠져 한국행을 결심하고, 현재는 서울대 국악과 조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안나 예이츠 교수를 만나봤습니다.

 

1. 안녕하세요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대학교 국악과 조교수이자 판소리를 연구하는 인류음악학자 안나 예이츠 입니다.

 

2. 원래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으셨나요판소리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요?

한국에 대해 인식을 하고 있었지만 정말 열정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판소리를 알고 나서였지요.  제가 런던대학교 아시아 아프리카 연구원 (SOAS) 석사과정에서 동아시아 문화정책을 연구하고 있었을 때, 학점을 채우기 위해 동아시아 전통음악에 대한 수업을 듣게 되었어요. 이 수업에서 판소리에 대해 배웠을 때쯤 주영한국문화원에서 판소리 공연이 있어서 보러 갔는데요. 수업 때는 그렇게 인상 깊게 보지 않았던 판소리가 현장에서 보니까 너무 매력적인 거에요. 공연하신 두분 명창은 송순섭 (구가중요무형문화재 제 5호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 이자람 (판소리 이수자, 서울대 박사 졸업)님이셨는데, 적벽가 중 <새타령>과 <조자령 활 쏘는 대목>을 선보이셨어요. 제가 그 때는 한국어를 잘 못 했지만, 소리와 발림(몸짓)만으로 새소리도 듣고 배 위에 싸우고 활 쏘는 장면을 제 눈 앞에서 생생하게 보는 느낌이었어요. 결국 그 공연을 한 순간도 놓치는 게 아까워서 제공된 자막을 보지 않게 되었어요. 언어적으로 완벽하게 이해를 못해도 감정이 너무 잘 전달됐는데, 이런 판소리의 표현력 덕분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3. 2013년은 해외에서 판소리에 대한 인지도가 거의 없을 때인데판소리 공연을 본 후 박사학위 주제로 판소리를 택하고 한국행까지 결심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단은 제가 학부 때 인류학 공부를 했어요. 그래서 석사 때 정치학을 공부하다가 판소리 공부를 하기 위해 인류음악학 (문화를 통해서 음악을 연구하는, 아니면 음악을 통해서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다시 넘어가는 게 그렇게 뜬금없는 선택은 아니었지요. 그 때 SOAS에 키스 하워드 (Keith Howard)라는 교수님이 계셨는데, 벌써 30년 넘게 한국음악을 연구하고 계셨고, 한국음악을 재미있게 설명해주셨어요 이 분으로 인해 제가 처음에 판소리 공연을 보러 갈 생각도 했고, 하워드 교수님이 저의 논문지도를 하셨으니까 결국 SOAS에서 판소리에 대해 박사를 연구하겠단 결정을 내렸어요. 그리고 한번 인류음악학 연구 방법으로 논문을 쓰겠다고 결정했으면 이 학문에서 원래 기본 원칙으로 현장연구를 하는 것이 있어서 (저도 당연히 해야 했기 때문에) 박사 과정 2학년 때 1년동안 한국에 거주하면서 현장연구를 하게 되었어요.

 

4. 바쁜 박사과정 유학생 신분으로 직접 판소리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 또한 인류음악학의 기본 원칙이지요. 음악으로 이론적으로만 접근하면 놓치는 것이 있다고 여겨서 인류음악학 연구를 하면 직접 실기도 배우는 원칙이 있거든요. 저도 처음에 그런 의도로 시작했어요. 하지만 실기를 이 정도로 즐길 줄은 몰랐지요! 지금은 판소리 실기를 계속 연구의 목적으로도 배우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즐거워서 하는 부분도 확실히 있어요.

 

5. 조금씩 일반인들도 판소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음을 느끼는데당시 외국인들이 판소리를 한다고 할 때 놀라는 사람이 많았을 것 같아요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요?

사실 놀라워하는 반응보다 저를 환영해주시는 소리꾼과 관계자가 더 기억에 남아요. 아름다운 예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실 놀라울 일은 아니잖아요, 오페라로 활동하는 한국인도 많이 계시는데 반대로 외국인이 한국 전통음악이 아름답다고 해서 배우고 싶다고 하면 저처럼 환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사실은 따뜻한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제일 인상 깊은 반응을 말씀드리자면 그냥 “소리 하는 외국인”으로서 주변 선생님들이 “네 목소리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면 적극적으로 “이렇게 하면 좀 더 잘 할 거야” 피드백을 주시면 제일 감사한 거지요. 왜냐하면 그 분들한테 제가 그냥 “외국인”이 아니라 “소리 하는 사람”, 즉 국적은 달라도 판소리 잘 할 가능성 있는 사람이 되니까요.

 

6. 유럽 지역 판소리 대회에서 우승까지 할 정도로 수준급의 판소리 실력을 갖고 있으신데, 판소리를 집중적으로 배울 당시를 소개해준다면당시의 목에서 피나는 연습 과정을 조금 자세히 들려주세요.

 

2015년 K-VOX 대회에서 (제공=안나 예이츠)

 

목에서 피가 난다는 것은(웃음) 정말 판소리에 대한 제일 큰 오해인 것 같아요. 목에 흉터를 만들면서 그런 허스키한 목소리를 만드는 부분은 어떤 면에서 있긴 하지만 사실은 무조건 허스키한 목소리가 있어야 소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목이 너무 상하면 소리를 제대로 못 할 가능성이 있어서 소리꾼들이 목 관리를 엄청 많이 하는 거에요! 저 같은 경우에는 현장연구 했을 때 여러가지 판소리 학습 방법을 경험해야 했지만 운이 좋게 그 중에 개인 레슨해주신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흥보가민혜성 선생님> 이수자)  학원은 제가 살았던 곳에서 10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여서 다른 스케줄에 없었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었어요. 그건 원래 판소리 배울 때, 중요한 부분이에요. 개인 레슨도 하고, 연습도 해야 하지만 학원에 있는 것 자체가 배움이에요. 다른 학생들이 연습하는 것을 들으면 아직 배우지 못했던 대목이 먼저 익숙해질 수 있는 거고, 틈틈이 선생님 시간이 있으실 때 연습하는 것을 보고, 피드백을 주시고, 레슨을 해주셨으니까 아주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일상적으로 학원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서 많이 배웠지만 제일 큰 효과는 산공부에서 느껴요, 겨울이나 여름이 일주~한달씩 산에 들어가서 하루종일 소리 하는 것이 확실히 목을 만드는 것에 제일 큰 도움이 되니까요.

 

7. 한국에서 일반 대중들은 판소리는 한의 음악이고, 판소리를 하는 사람은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2015년에 중요 무형문화재 60인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당시에 몸소 느꼈던 생각이나 인상은 무엇이었나요?

 

2015년 고(故) 박송희 명창과의 인터뷰 모습 (제공=안나 예이츠)

 

일단은 운이 좋게 무형문화재 선생님들 여러분도 인터뷰할 수 있었지만 이 60인 중에 1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한 연령과 경험이 있으신 소리꾼을 인터뷰할 수 있어서 현대 판소리의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점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특히 나이가 있으신 선생님들, 일제 강점기 때나 한국 전쟁 때 활동하신 선생님들의 이야기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시면서 이 예술혼을 지키셨는지 들었을 때,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8. 현재는 서울대 국악과 조교수로 2020년부터 학생들에게 인류음악학을 가르치고 있으신데요. 외국인 교수로 한국의 전통음악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소감을 들려주신다면?

 

2019년 International Council for Traditional Music학회 발표 모습(제공=안나 예이츠)

 

제가 너무도 운이 좋게 서로를 많이 응원해주고 도와주시는 교수님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요. 저희 국악과의 다이내믹한 분위기에서 저도 에너지를 많이 얻고 있어요. 다른 교수님처럼 저도 항상 최선을 다 해서 학생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환경을 만들고 싶은 것이 제일 우선적인 것 같고요. 그 안에서 제가 외국인으로서, 젊은 교수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누구든 다 특별한 경험이 있어서 다양한 생각과 능력이 있는데 제가 갖고 있는 능력으로 함께 노력할 수 있으면 영광이라고 생각하지요.

 

9. 외국인으로 눈으로 본 판소리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또 한국의 전통음악이 해외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일단은 해외에서 국악을 보는 시선이 국내에서 보는 시선과 제일 큰 차이는 선입견이 없단 것이지 않을까 싶어요. 해외에서 “국악은 올드하다, 촌스럽다, 어렵다”고 생각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니까요. 그래서 순 음악, 순 예술로 접근하게 돼요.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국악을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은 없잖아요, 다 개인적 취향이 있어서요. 하지만 국악이 해외에서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증명하는 사례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저를 가르쳐주신 민혜성 선생님은 프랑스에서 10년 넘게 판소리 워크샵을 하고 계시는데, 프랑스에서 한국소리페스티벌 (K-Vox Festival)을 운영하시는 연구자이자 번역가이신 한유미, 에르베 피조디에 (Hervé Péjaudier) 서생님과 함께 이 오랜 시간동안 프랑스어권 판소리 향유층을 만드셨어요. 오랫동안 판소리에 대해 알리기 위해 노력하셨으니까 지금 워크샵 참여자는 30명만 받지만 100명 이상 지원하고 있고요, 워크샵과 공연을 몇 년 동안 다니신 분들은 판소리를 즐길 줄 아니까 지금 프랑스나 벨기에에서 판소리 공연을 보러 가면 서울보다 추임새를 많이 해요. 이렇게 즐길 수 있는 환경만 마련해주면 향유층이 자연스럽게 생길 거에요.

 

10. 이날치악단광칠고래야 등 세계에 한국의 전통음악을 알리는 힙한 음악그룹의 활동에서 연구자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확실히 최근에는 국악을 갖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많이 개방된 것 같아요. 앞 세대가 길을 열어줬으니까 지금 이런 독특한 시도가 나오고 있고요. 시도를 많이 할 수 있으니까 좀 성공적이지 않은 시도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 성공적인 시도도 나올 수 있는 거지요. 다만 너무 이 “힙함”에만 집중했을 때, 트렌드가 지나가면 또 사라질까봐 걱정 되는 부분도 있어요. 모든 사람의 관심을 짧게 사로잡는 것보다 다양한 향유층을 위해 오랫동안 국악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당연히 이 다양한 향유층 중에 순 전통을 즐기는 사람들도 포함되기도 하지요, 현대 사람들이 연주하고 있고 현대 사람들이 듣고 있는 음악이니까 사실 전통음악을 현대음악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11. 인류음악학 연구자로서 한국문화와도 다양하게 친숙해졌을 것 같은데, 지금은 한국문화의 어떤 점에 푹 빠져 있는지 궁금하다.

여전히 판소리지요, 처음에 접했을 때 이 표현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만 판소리에 대해 알아갈수록 더 많은 매력을 발견하고 있어요. 배우는 대목이 많아지면서 제가 판소리에 대한 이해도 달라지고, 나이를 들어서 같은 대목을 다르게 보는 부분도 확실히 있어요. 특히 판소리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으면 너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아요. 제가 아직 판소리에 대해 모르는 것들이 많아서 앞으로 계속 알아가면서 더 많은 제가 아직 모르는 매력을 발견할 것 같아요.

 

12.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판소리애호가로서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제가 다른 사람 (학생이나 지인)한테 판소리에 대해 알리고, 판소리의 재미를 느끼게 만들 때가 제일 보람이 큰 거지요. SOAS에서 하워드 교수님이 저로 하여금 한국음악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게 하고, 더 알아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처럼 저도 앞으로 다음 세대의 한국음악을 즐기고 궁금해하는 사람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남산국악당 마이판소리 공연 ⓒ이은숙 (제공=안나 예이츠)

 

13. 마지막 질문입니다. 안나 예이츠가 생각하는 오늘의 판소리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내일의 판소리에 대한 짧은 생각도 들려주세요.

제가 현장연구했을 때 이 질문을 많은 소리꾼들한테 여쭤봤는데 지금 제가 대답해야 하니까 얼마나 어려운 질문인지 알게 되네요.
제 생각에는 오늘의 판소리에는 전통도 있고, 힙한 퓨전도 있고, 무형문화재도 있고, 아마추어도 있고, 인생을 소리에 바친 큰 선생님도 계시고, 그냥 재미로 흥얼거리는 젊은 학생도 있어요. “판소리”란 단어는 저희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현대 사회에 많은 사람들한테 정말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지요.
제가 감히 미래를 추측할 수 없지만, 제가 희망하는 미래를 말씀드리자면, 선입견 없이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판소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전통은 전통대로, 실험은 실험대로, 개인 취향에 따라 판소리를 다양하게 만날 수 있기 위해 사소하지만 저도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유태평양


안나 예이츠
2020년부터 서울대 국악과에서 인류음악학을 가르치는 교육가이자 연구자. 2013년에 판소리를 만나 현재까지 배우고 있고, 현재 국내외에서 판소리와 국악을 널리 알리기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